‘다이내믹 코리아’ 브랜드 이야기 ①
한국의
이미지를 대표할 국가브랜드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는 세계 속에서
약동하는 한국의 시대상과 잠재력을 잘 반영했다는 평가와 함께 세계와 국민의 공감을
얻으면서 21세기 국가 대표 영문 브랜드로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2006년 독일 월드컵을 계기로 '다이내믹 코리아'가 전 세계인에게 다시한번 각인될 수 있길 기대하면서 그 탄생 배경과 외국의 사례 등을 통해 국가브랜드가 갖는 의미와 비전을 공유하고자 한다.
게재 순서
1. '다이내믹 코리아'와 함께 한국 이미지 수직상승
2.국가브랜드로 '코리아 프리미엄'시대를 연다 (박상훈 (주)인터브랜드 코리아 대표)
3. '다이내믹 코리아' 토리노 올림픽 금빛 질주(안연길 주 이태리 홍보관)
4. 외국인이 보는 다이내믹 코리아(한우창 글로벌 홍보팀장)
5. "해외 나갈 때는 단풍잎 핀 달고 나가요" (김희범 주 캐나다 홍보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1년 6개월여 앞두고 서울에서 한 외국인 기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 대한 인상이 어떠냐?”는 다소 의례적인 질문에 그 외국인 기자는 “역동적인 사회(Dynamic society)"라고 답을 했다. 그 순간 ”바로 이거다!"라며 무릎을 쳤다.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한국과 한국인을 나타내기 위해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국가브랜드 ‘다이내믹 코리아’ 탄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는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짧지만 강렬한 영어 표현을 찾고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이 한국과 일본 공동 개최로 열리게 되면서 한·일 간 홍보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또한 한·일 간의 뿌리 깊은 라이벌 의식도 있었고 월드컵에서 한국이 일본의 들러리만 서는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인 여론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역대 월드컵 대회에서 그다지 긍정적이 못했던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생각해 볼 때 한·일 간의 국가이미지 경쟁은 쉽지 않아 보였다.
국가브랜드는 국가경쟁력이다
국비 유학생이자 열혈 축구팬으로 경기장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던 86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한국과 관련해 가장 빈번하게 들었던 얘기는 한국의 민주화 시위와 남북대치에 관한 우려였다. 물론 일부 멕시코인들은 한국이 세계청소년축구 4강에 올랐던 신화를 떠올리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지만 대다수에게 한국은 머나먼 아시아의 미지의 나라였다.
94년 미국월드컵 때는 주미한국대사관 공보관으로 근무하면서 월드컵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한국은 2002년 월드컵 유치 출사표를 던졌던 시점으로 일본과 치열한 경합을 벌여야 했다. 강력한 국가브랜드의 필요성이 이때처럼 절실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마침내 2002년 월드컵이 공동개최로 결정이 났고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국장으로 월드컵홍보의 최전선에 나서게 됐다. 지난 월드컵 대회와는 달리 이번에는 외국 언론을 상대로 한 홍보전이 바로 우리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특히 친절한 국민성과 막강한 경제력을 앞세운 일본의 탄탄한 국가 이미지는 힘겨운 상대였다.
그러나 월드컵 홍보전은 출발부터 감이 좋았다.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취재한 많은 외국 언론인들은 “일본은 당연히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준비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한국엔 회의를 가졌다. 하지만 한국의 준비상황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고백했다.
세계가 주목한 한국인의 역동성
“한국이 은둔의 나라인 줄 알았는데 개방적이며 역동적인 사회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외신들의 보도가 잇따랐다. 한·일 월드컵을 취재하는 외신기자들은 한국을 개방적/역동적, 일본을 폐쇄적/정적인 사회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조직위 홍보컨설팅회사였던 미국 홍보회사도 한국과 일본에 대해 유사한 분석결과를 내 놓았다. 잘못 알려졌던 한국의 ‘진실’이 제대로 세계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다이내믹 코리아’의 탄생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이내믹 코리아’가 비록 외국 언론이나 해외홍보전문가들로부터 높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지만, 조직위 안팎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너무 격동적이고 불안정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적지 않은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다이내믹 코리아’ 탄생에는 해외홍보원 전문위원 엘리자베스 리와 당시 AFP 서울지국장 팀 윗처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해외홍보원에서 20년 이상 근무하면서 대통령 연설문을 감수해온 엘리자베스 리는 “다이내믹 코리아가 발전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역동성이기 때문에 결코 불안정하거나 부정적이지 않으며 이처럼 한국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도 없을 것”이라고 힘을 실어주었다. 외신기자로 한국을 오랫동안 지켜보아온 팀 윗처 지국장 역시 미래로 뻗어나가는 한국을 표현하는 데 ‘다이내믹 코리아’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월드컵 전초전으로 열린 컨페더레이션스 컵 대회를 기점으로 ‘다이내믹 코리아’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홍보전이 가속화 됐다. 세계 언론도 ‘다이내믹 코리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호주의 한 신문은 비무장지대(DMZ) 앞까지 월드컵 엠블렘기가 걸려있는 한국의 월드컵 열기를 전하고 한국을 역동적인 국가로 소개했다. 영국의 유력지 이브닝스탠더드는 ‘영국이 한국으로 배워야 할 10가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인의 놀라운 역동성을 배울점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다이내믹 코리아’ 미래 지향적 한국 표현
‘다이내믹 코리아’는 우리 국민들에게도 합격점을 받았다.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가 2001년 국영문 월드컵 캐치프레이즈를 공모했는데 ‘다이내믹 코리아’가 들어간 문구가 단연 압도적이었다. 한국 이미지에 대한 KBS 온라인 조사에서도 ‘다이내믹 코리아’가 1위를 차지했다.
‘다이내믹 코리아’는 2002년 12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주재한 월드컵 준비상황 점검 국무회의에서 우리의 국가브랜드로 공식 인정을 받는다.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다이내믹 코리아’를 국가 홍보에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월드컵 국가이미지 홍보는 탄력을 받게 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는 ‘다이내믹 코리아’를 정식을 사용할 수 없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최국의 독자적인 캐치프레이즈 사용에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국가브랜드 파워는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브랜드 파워는 수십 년에 걸쳐서 형성 되어 가는 것이다. ‘다이내믹 코리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월드컵을 계기로 ‘다이내믹 코리아’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다.
월드컵의 위력은 대단했다. 88서울올림픽 때의 두배에 이르는 1만여 명의 외신기자와 함께 수십만의 전세계 축구팬들이 한국으로 몰려왔다. 이들은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한국의 구석구석까지 누비고 다녔다. 월드컵이 끝난 뒤 저마다 고국으로 돌아가 ‘다이내믹 코리아 체험담’을 한보따리씩 풀어놓았다. FIFA는 ‘한국의 열정적인 길거리 응원’을 역사상 100년 동안 일어난 10대 사건에 선정했다. ‘다이내믹 코리아’로 대변되는 한국의 역동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월드컵을 통해 그리고 ‘다이내믹 코리아’를 통해 그동안 저평가됐던 한국의 국가브랜드 파워는 수직으로 상승했다. 우리의 국가브랜드 ‘다이내믹 코리아’ 홍보도 이제 제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월드컵의 그늘에서 벗어나 ‘다이내믹 코리아’를 국제사회에 확고하게 자리잡게 하기 위한 우리의 관심과 노력을 기대해 본다.
인병택 대사 (btlin06@mofat.go.kr)
출처 : 국정브리핑(news.go.kr) 2006/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