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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국내언론

[기고문] 韓·日 역사교류 행사 공감대 얻어

부서명
작성자
작성일
2004-09-09
조회수
3390
“이럴 때 일본에 가도 괜찮아.” 2001년 여름, 일본 나고야총영사로 근무가 결정된 것을 안 친척들은 하나같이 걱정이 많았다. 당시 한일관계는 교과서문제며,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으로 학생들의 수학여행도 중지될 정도로 얼어붙어 있었다.

마침 그때, 한국의 한 방송국에 ‘역사스페셜’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사건 중심으로 사이버 스페이스를 활용, 알기 쉽게 재구성한 교양프로였다. 역시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한일관계가 많았다. 나는 한일 양국이 공통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 인식을 서로 달리하고 있는 현실이 한일관계를 불편하게 하는 원인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나고야 시민들과 이 역사스페셜 프로그램을 보면서 인식을 가까이하고 싶었다. 마침 그 무렵, 백제 무령왕 이야기가 방영되고 있었다. 나는 이를 녹화해서 가져갔다.

부임직후부터는 직원들과 상의하여 역사좌담회 개최준비를 하였다. 하나의 프로젝트였다. 일본어가 능숙한 직원이 비디오를 몇 번씩 보고 줄거리를 번역하고 동시통역을 준비하였다. 2001년 11월 일본사람 30여명을 총영사관 회의실에 초대하여 제1회 역사좌담회를 개최하였다. 대학의 교수, 국회의원 비서관, 저널리스트, 회사원, 주부, 변호사 등 이른바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다양하였다. 제1회는 호평리에 끝났다.

우연히 녹화한 프로그램이지만 고대 한일관계를 상징하는 무령왕이 등장하는 절묘한 내용이었다. 무령왕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40년간 살다가 백제의 왕이 된 인물이다. 1500년 전 당시 한·일 간의 긴밀한 관계를 알게 된 참석자들은 깜짝 놀랐다. 양국의 선조들이 그렇게 잘 만들어 놓은 관계를 후손들이 망쳐놓았다는 자괴감도 내비쳤다. 1회를 끝내고 2회째를 준비하고 있는 2001년 12월 일본의 국왕이 68세 탄생일을 맞추어 기자회견을 했다. “나 자신, 환무천황의 어머니가 백제의 무령왕의 자손으로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습니다.” 국왕의 기자회견으로 일본열도가 백제 무령왕 관심으로 들끓었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빗발쳤다. 한 달 전에 1회 역사 좌담회에 다루었던 “그 백제왕이 바로 국왕의 선조뻘 되는 무령왕이냐”면서 현지신문에는 우리가 선견지명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회를 마치면서 그간의 자료를 모으고 참가자의 감상문도 실은 기념지가 출간되었다.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가 책의 제목이다. 지금 28회를 끝내고 29회 자료가 완성되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2년 반을 해 온 것이다. 그 동안 한일관계는 2002년 월드컵축구 공동개최의 성공으로 크게 달라졌다. 한·일 간 민간교류는 하루 1만명이 왕래할 정도이다. 우리의 역사좌담회도 참가자들이 크게 늘었다. 최대 50명 수용의 2층 회의실이 좁아 100명 수용의 5층 강당으로 옮겨야 했다. 이제 나고야 한국총영사관의 명물로 자리잡고 있다. 나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거대한 산도 삽과 괭이로 옮겨진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바뀌어도 삽과 괭이를 물려주면 계속 산은 옮겨갈 것이다. 풀뿌리 차원에서 한일역사교류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계속 요원의 불처럼 타게 된다면 한·일 간 불행했던 역사의 응어리도 차츰 없어질 것으로 본다.

/유주열 前나고야 주재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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