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편리한 한국'과 행복지수
매체 : 문화일보
게시일자 : 20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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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으로 밖에 나가 있다가 한국에 며칠 다녀오면 한국, 특히 서울이 참 잘 기능하는 도시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2012년도 재외공관장회의에 참가하기 위해서 2월 하순 서울에 머물렀다. 새벽에 종로거리에도 가보았고 밤중에 명동거리도 거닐어 보았다. 이른 새벽이고 한 밤의 시간이라도 서울에서는 아직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가게가 열려 있고 길거리에는 갖가지 물건을 파는 수레가 즐비하다. 버스와 전철 등 대중교통이 교통카드 하나로 손쉽게 연결되고 맘대로 갈아탈 수 있다. 택시도 손쉽게 탈 수 있다. 옛 추억을 되살리려고 죽세공으로 유명한 담양에도 KTX와 고속버스로 반나절 만에 다녀왔다.
그러나 이렇게 잘 기능한다고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곳곳은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조그만 지체에도 참지 못하고 빵빵거린다. 도시의 소음과 매연은 걱정할 만한 수준이다. 인도는 가게에서 삐져나온 진열대와 거리의 장사판으로 정작 보행자는 곧바로 가지 못하고 이리저리 피해가고, 인도와 횡단보도에는 퀵서비스 오토바이가 내달린다. 버스 전용 1차로는 물건을 실어 나르는 트럭과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가 차지하고, 이로 인해 버스는 2차로에 삐딱하게 정차한다. 승객은 버스를 타고 내리기 위해 1차로를 지나다닌다. 이처럼 뛰어다니며 쫓기듯이 사는 것이 우리 일상이다.
‘빨리 빨리’ 문화와 부지런함이 오늘의 한국을 이루었다는 것은 자랑거리이나 경이적인 성장 이후 이제는 우리도 개인의 행복과 국가적 차원의 행복지수를 생각할 때가 됐다고 본다.
금년도 공관장회의에서는 ‘글로벌 코리아’ 비전의 실현, 복합외교를 통한 선진외교 구현 등 2012년 주요 외교정책 기조와 더불어 외교부 조직의 혁신과 역량 강화 방안을 놓고 토론했다.
올해 주요 외교목표인 국민이 신뢰하는 안보(安保)외교, 세계공영(共榮)에 기여하는 외교, 미래성장(成長)동력을 확보하는 외교, 국민에 봉사(奉仕)하는 외교 등 4개 주제로 모두 토론에 열중했고, 지역별로 각 지역의 현안 및 추진과제·전략도 깊이 있게 토의했다. 이 모든 것은 특수한 안보상황의 한반도에서 우리 국민이 편안하게 살고, 우리의 국력이 세계 속으로 뻗어나가 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각국 국민들과 우의를 다지고, 세계에 우리를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빨리빨리’의 경이적인 경제력을 갖춘 나라 말고도 국민이 행복한 민복 (民福)의 국가 브랜드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우리네 집안의 상부상조 정신, 두레정신이 근대적인 사회복지 개념을 보완하는 사회복지의 두 개의 닻을 가진 나라, 전세기 들어 나라를 잃고 뒤이어 찾아온 국토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는 통일의 기반을 슬기롭게 다지는 나라, 미래 지향적인 녹색 경제와 환경에 신경을 쓰는 나라, 국민이 행복한 민복의 나라로 세계에 알려져야 한다. 우리 공공외교의 노력이 그 연장선에 있다.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녹색 경제·성장의 나라인 북유럽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의 거리에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잘 갖춰져 있어 출·퇴근시간에는 자전거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찬 공기를 가르며 힘차게 페달을 밟는 그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에 내 자신이 너무 익숙해져서인지는 몰라도 번잡함 속에 질서가 실종되고, 필요 없이 사람들을 바쁘게 내모는 너무도 다른 서울의 모습에서 우리의 일상이 이제는 우리의 문화로 자리잡아 버린 것은 아닌가 걱정도 된다. 오랜만에 들러 서울의 훌륭한 기능에 새삼 탄복하면서도 아직은 꼭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는 우리 국민들의 일상과 도시 모습에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를 새삼 생각해본다.
◆ 김병호(58) ▲서울대 사회교육과 ▲오스트리아 빈대학 철학박사 ▲제13회 외무고시 ▲주독일 1등서기관 ▲외교통상부 서구과장 ▲주러시아 참사관 ▲주오스트리아 공사▲주키르기스스탄 대사 ▲주덴마크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