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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장관

윤병세 제37대 외교부 장관 퇴임사

작성일
2017-06-19
조회수
10752

오늘 이 자리에 서서 여러분들을 마주 보니까 4년 3개월전 취임식때 생각이 납니다. 예상치 않게 남들보다 빨리 공직을 떠나서 5년만에 외교장관으로 복귀한 제 입장에서 여러 말씀을 드린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무엇보다도 장관직 수임을 소명으로 생각하고 오로지 국익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하겠다는 취지로 말씀드린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이래 늘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치열하게 살았는데 이렇게까지 오래 여러분들을 괴롭히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얼마 전 어느 언론 인터뷰에서도 장기간의 장관 근무에 대한 소회를 질문 받았을때 제가 4년여 기간이 4개월 같기도 하고 40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다소 과장되게 얘기를 한 바가 있습니다. 지난 4년여간 냉전종식이후 그 어느 때보다 거세지고 있는 외교안보 격랑속에서 방향타를 잡고 전 세계를 항해하다보니 시간가는 것을 느낄 틈도 없었지만, 그 항로 고비고비마다 수없이 많은 거센 파도와 암초를 헤쳐 나온 고뇌의 무게를 따지면 너무도 긴 여정같다는 소회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는 장관직을 마무리하는 의미가 큽니다마는 76년말 외교부에 입부한 것으로 치면 40년 가까운 외교관 생활을 끝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1976년 북한의 도끼만행사건 직후 남북간 및 미북간에 군사적 긴장이 크게 고조되었던 시절에 외교부에 들어와 현재진행형인 북핵위기와 지정학적 지각변동까지 우리 외교사의 수많은 격동의 현장을 직접ㆍ간접으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자주 인용하는 Acheson 전 미국무장관의 회고록 제목처럼, “Present at the creation”, 즉 역사의 현장에 늘 서있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난 4년여간이 저에게 특히 소중하고 의미있었던 것은 순풍속에서든 역풍속에서든 외교부 동료 여러분들과 국익을 위해 동고동락 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제 인생에서 가장 보람있는 것이었다고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우선 지난 4년여간 여러분과 함께 해서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Frank Sinatra는 그의 대표적인 노래 My Way에서 삶을 회고해보니 결국 모든 것이 so amusing했다고 얘기했는데, 저로서는 Albright 전 미 국무장관이 퇴임시 말했던 것처럼 every single day, 즉 하루하루가 보람 있었습니다. 재임기간 내내 제가 3중파고라고 얘기해 왔던 동시다발적인 도전이 우리를 끝없이 괴롭혀 왔지만 우리는 역사가 그리고 이 시대가 우리에게 부과한 책무와 도전을 결코 회피하지 않고 중심을 잡고 슬기롭게 극복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 도전 덕분에 더욱 성장하였습니다. 도전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고뇌했고 지혜를 모았고 창의적인 노력도 많이 하였습니다.

북핵이나 한미관계, 일본과의 과거사문제로 수없는 전략토론을 했던 기억뿐 아니라, 탈북자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몇 시간씩 빗속에 차를 몰고 달려갔던 공관원들, 서아프리카 에볼라 긴급의료지원단에 생명의 위험을 마다않고 경쟁적으로 참여했던 분들, 과거에 비해 유난히도 많았던 강대국들과의 고난도 협상에서 창의적인 외교로 마지막에 웃던 순간들, 살인적인 출장일정을 마다않고 저와 함께 미국, 유럽, 쿠바,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을 순방하거나, 유엔과 제네바, 뮌헨과 브뤼셀 등 글로벌 다자외교 무대를 누비던 기억들, 연중무휴 끊임없이 발생하는 재외국민 관련 사건사고 시마다 불철주야 헌신하는 여러 동료들의 모습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지난 4년여간 격동의 시대속에서도 우리 외교가 양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크게 성장하는데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헌신해 주신 본부와 재외공관의 모든 동료 직원 여러분들과 가족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차대전중 처칠수상은 영국국민들에게 피와 땀과 눈물을 설파했지만 지난 4년여간 우리 모두는 열정과 소명의식, 그리고 장인정신으로 무장하여 수없는 잠못 이루는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한반도와, 동북아, 그리고 글로벌한 차원에서의 동시다발적인 도전을 극복하면서 우리 외교가 새로운 지평을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산업화 시대, 민주화 시대, 세계화시대에 맞는 외교도 힘들었지만 오늘날 초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지정학적/지경학적 갈등과 각자도생 추세 등으로 고난도 외교를 펼쳐야하는 난제들이 너무 많이 늘어 났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모두의 힘을 합쳐 Mission Impossible을 Mission Possible로, Mission Accomplished로 전환시켜준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치하드립니다.

지난 4년여간 연 평균 3개월에서 4개월간 전세계를 방문하고 매년 국내외에서 150에서 200회 가까운 회담을 갖느라 많은 동료들을 너무 고생시켜서 늘 부담스러웠는데, 이것은 우리의 외교력이 전세계로 신장되고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실감하지만 우리나라가 오늘날 여러 면에서 국제사회의 핵심국가로 성장했다는 점을 여기 계신 많은 분들도 실감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처럼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무엇보다도 여러분들의 헌신과 노력 덕택입니다.

이처럼 외교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2,000만 해외여행객, 250만 재외국민 시대에 국민들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외교 인프라 공급은 적시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유사한 국력의 다른 나라보다 인프라가 열악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여러분들이 일당백, 일기당천의 자세로 진력 해주시지 않았다면 오늘의 우리 외교는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자랑스러울 뿐입니다.


특히 이 자리에서 10여년전 어느 선배 외교관의 퇴임사의 한 부분을 여러분과 공유했으면 합니다. 음악에 조예가 깊으셨던 이 선배는 우리 외교 업무를 오케스트라에 비유하시면서 흔히 오케스트라가 좋은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특정 수석 연주자들 덕분이 아니라 각 단원들이 자기가 맡은 임무를 차질없이 수행할 때 혼연일체의 화음이 나오는 것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종합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외교의 성과는 지휘자라고 할수 있는 장차관을 비롯한 간부들만의 몫이 아니며, 외무행정관, 주무관, 실무관, 방호요원, 협력업체 직원 등 이 청사와 재외 공관에서 일하는 모두가 대한민국호의 성공을 위해 Team MOFA로 뭉쳐 한 마음으로 일했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거대한 배가 출항하여 목적지까지 표류하지 않고 안전하게 도착하려면 선장만 필요한 것이 아니며, 항해사, 기관사, 객실 승무원, 안전 요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각 분야에서 소리없이 외교를 지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정부는 바뀌었지만 우리 외교환경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으며, 이러한 객관적 여건은 신 정부가 들어왔다고 해서 쉽게 바뀔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제가 4년전 취임사에서도 강조드린 것 같은데 여건이 어려워질수록 외교와 외교부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7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외교가 시대별로 어떤 고뇌를 했고 당면했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하고 극복했는지 냉정히 분석하고, 긴 호흡속에서 종합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항상 중요합니다. 우리의 판단과 대책 하나하나가 우리의 국익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격동의 시대, 지각변동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특히, 북한 문제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우리에게 알파와 오메가로 도전을 지속 야기하겠지만, 북한/북핵 문제를 역점적으로 다루어 나가는 가운데에서도, 지난 수년간 전세계로 뻗어 나간 글로벌 외교의 지평이 더욱 확대ㆍ심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북핵문제뿐 아니라 평화 정착과 궁극적 통일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제가 지난 수년간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처칠의 명언을 종종 되새기곤 했는데, “비관론자는 기회속에서도 어려움을 찾고, 낙관론자는 난관속에서도 기회를 찾아낸다”는 말입니다. 지나친 낙관론이든 지나친 비관론이든 모두 경계해야 하겠습니다만, 외교하는 사람들은 결코 패배주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도전이 오더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긍정의 철학을 갖고 업무에 임해주기를 당부드립니다. 그리고 자신감이 근거없는 자신감이 되지 않도록 늘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지난 수 년간 우리는 다양한 역량과 경험을 축적하였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앞으로 어려운 외교적 도전이 오더라도 Team MOFA의 전통, 그리고 총체적 역량 및 지혜로 이를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외교부와 유엔무대에서 많은 경험과 경륜을 쌓으시고 세계속의 한국의 위상을 누구보다 잘 고양시킬 수 있는 강경화 장관께서 신정부의 외교장관으로 임명되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하드리며, 새로운 사령탑 아래 우리 외교가 더 큰 도약을 이룩할 것으로 믿습니다.


이제 저는 외교장관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MOFA Alumni이자 민간인으로 돌아갑니다. 이 자리에 서면서 특히 개인적으로 고마운 것은 9년전에 갑작스레 공직을 떠나야 했을 때에는 퇴임식도 못갖고 조용히 떠날 수 밖에 없었는데 오늘은 많은 동료 후배들께 직접 작별인사를 드리게 되어 너무도 감사할 뿐입니다. 지난번 은퇴시 제2의 인생을 살았다면, 이번에 또 은퇴 후에는 제3의 인생을 설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우리의 동료 대사 한 분이 고은 시인의 시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는 짧은 시를 읊었는데 요즘은 나이가 들고 여성 호르몬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조그마한 것에서도 의미를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아주 오랜만에 workoholic이라는 말 안 들으면서 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좀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어서 조금은 흥분되기도 합니다. 물론,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믿지 않으려고 하겠지만. 외교부를 떠나더라도 앞으로도 늘 우리 외교를 생각하며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우뚝 솟아오르도록 성원과 애정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제가 아주 좋아하는 이태리 성악가 Andrea Bocelli의 노래“Time to Say Good bye” 가사처럼 “It’s time to say good-bye,” 작별을 고할 시간입니다. 여러분 그간 정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무한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영원히 사랑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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