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유럽 식탁의 문턱,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로 만들려면 관련 KDI 경제정보센터에서 발간하는 월간 '나라경제 10월호, 세계는 지금' 코너에 기고된 내용입니다.
EU는 세계 최대의 농식품 수출국이자 시장이다. 지난해 EU 농식품 수출의 61%, 수입의 57%가 FTA 상대국과 이뤄졌을 만큼 FTA는 EU 농식품 교역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FTA에서는 농산물시장을 열어줬던 EU가 관세 인하와는 별개로 엄격한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SPS)와 동물용 의약품 규제를 적용하면서 새로운 수출 장벽을 만들었다.

최근 EU 농업계에서 내는 성명서는 크게 두 가지 주제로 귀결된다. 첫 번째는 기후변화 대응이다. 올해 유럽의 여름은 폭염과 극심한 가뭄, 맹렬한 산불이 이어지는 등 유난히 뜨거웠다. 기후위기가 일시적 자연재해가 아니라 농업 생산량과 소득을 흔드는 상수가 되면서 농업인의 근심을 키우고 있다. 두 번째는 농산물시장을 둘러싼 대외 여건이다. 미국발 통상 갈등이 본격화한 이후 EU가 새로운 시장 확보를 위해 여러 국가 및 지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EU 농업계 상황이 녹록지 않다.
수입 농산품에 EU 기준 요구하는 ‘거울 조치’ 적용…
브라질, 항생제 사용 규정 미준수로 EU 육류 수출 막혀
EU는 세계 최대의 농식품 수출국이자 시장이다. 지난해 EU 농식품 수출의 61%, 수입의 57%가 FTA 상대국과 이뤄졌을 만큼 FTA는 이미 EU 농식품 교역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EU가 FTA 확대를 통해 수출시장을 넓히는 것은 유럽 농업의 성장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중요한 전략이다. 하지만 FTA를 바라보는 농업계의 시선은 복잡하다. 최근 EU가 FTA 협상을 타결한 메르코수르(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등은 EU 입장에서 농업 부문의 민감도가 매우 높다. 특히 메르코수르는 EU가 경쟁력을 갖기 어려운 저비용 농축산물의 대규모 생산·수출 지역인 만큼 EU 내부에서 논란이 컸다. 그 민감성을 보여주듯이 1999년 협상이 개시된 이후 최근의 정치적 합의까지 약 25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고, EU는 정식 비준에 앞서 무역 분야의 합의사항을 따로 분리해 올해 5월 1일부터 잠정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EU 농산물시장 확대를 기대하며 이 긴 여정의 끝을 환영했던 메르코수르 국가들, 특히 브라질의 기대에는 먹구름이 드리웠다. 예상치 못했던 EU 수입 농산물 규제에 직면해 실제 수출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FTA에서는 농산물시장을 열어줬던 EU가 관세 인하와는 별개로 엄격한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SPS)와 동물용 의약품 규제를 적용하면서 새로운 수출 장벽을 만들었다. 이는 일명 거울 조치(Mirror Measure)로 수입품과 공정한 경쟁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제3국에서 EU 역내로 유입되는 제품들에 EU 기준을 적용하도록 하는 EU 법률상 일방적 규제를 일컫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브라질이 직면한 항생제 사용 규제다. EU는 지난 9월 3일부터 「동물용 의약품 규정」에 따라 EU에서 금지된 항생제의 사용 제한을 EU 수입품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는 수입 조건[Commission Implementing Regulation (EU) 2024/2598]을 전면 시행했다. 이 규정의 시행을 위해 EU로 동물 및 동물성 제품의 반입이 가능한 제3국 목록을 발표했는데 브라질은 항생제 사용 규정 미준수라는 이유로 제외됐다. 25년의 지리한 협상 끝에 EU 시장 접근을 확대한 브라질로서는 핵심 수출품인 쇠고기와 가금육이 비관세 요건에 의해 수출이 제한되는 상황에 직면했으니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브라질산 꿀과 가금류는 규정 시행일인 9월 3일을 갓 넘겨 긴급 감사를 끝내긴 했으나 EU 회원국의 승인 여부에 따라 수출 재개에 몇 달이 걸릴 수도 있고, 쇠고기는 계속해서 감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브라질은 육류 수출 재개를 위한 협상이 적시에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도출하지 못한다면 균형 잡힌 무역 조건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을 동원할 수 있으며, 예컨대 EU산 유제품 및 올리브유 제품에 대한 비관세 장벽 등 보복 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물론 이 사례를 두고 브라질의 식품 안전관리 기준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브라질이라는 특정 국가가 아니라 EU의 규제가 적용되는 방식에 있다. EU는 단순히 수입품의 ‘최종 제품’에서 잔류 물질이 검출됐는지를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 EU 시장에 들어오는 식품이 ‘어떤 방식’으로 생산됐는지까지를 규제의 대상으로 삼는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안전한 식품을 생산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EU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식품을 생산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 된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국제 수준의 식품 안전 기준을 준수하는 국가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식품 안전뿐만 아니라 환경, 동물복지와 같은 기준들도 강화되는 등 EU의 규제환경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으며 선진 농축산물 수출국 역시 EU의 규제가 불편해지는 상황이다.
수입 규제 강화엔 EU 농업계 불만 해소 목적도 있어…
농약 MRL 개정 시 제3국 농업계엔 생산비 증가 우려
이러한 EU의 수입 식품에 대한 규제 강화의 목적은 EU의 농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함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적 고민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EU의 안보와 경쟁력에 대한 지출 우선순위가 높아지자 EU 공동예산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농업 부문의 지원 규모가 줄었다. 이에 터져나올 농업계의 불만을 해소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농식품 부문에서 EU의 생산 방식과 기준을 제3국에 요구하는 통상정책 활용은 연임에 성공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 2기가 출범한 2024년 말 이래로 강화돼 왔다. 2024년 초부터 유럽의회 선거를 계기로 EU 농업계는 엄격한 환경 규제, 외국산 농산물의 유입 증가, 전쟁과 기후변화에 따른 생산비 증가를 지적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에 대응해 EU 집행위는 회원국, 전문가, 업계 등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EU 농업 미래에 관한 전략대화’를 출범시켰다. 약 9개월간의 논의를 거쳐 작성한 보고서는 무역 개방성과 공정한 경쟁 조건을 조화시키면서 세계적으로 높은 기준을 장려하는 균형 잡힌 무역정책을 채택할 것을 권고했다. EU 소비자의 기대치를 최대한 고려해 수입 제품을 EU 식품 및 농업 표준에 부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EU 집행위는 후속조치로 EU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장기 대책을 발표했고, 이에 따라 보건식품안전총국(DG SANTE)은 2024~2029년의 정책 핵심 우선순위로 수입품 통제 강화 및 공정 경쟁 확보를 제시하고 실제 입법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식품 및 사료 안전 옴니버스 패키지다. 이 규제 정비 패키지의 기본 목적은 EU의 식품, 사료 안전 관련 법령의 불필요한 행정부담을 줄이고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EU에서 금지된 농약이 수입품을 통해 재유입되는 것을 막는 것도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소비자 위해가 확인되지 않더라도 수입 농식품에 대한 농약 잔류허용기준(MRL)을 정량한계(실질적으로 0)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일부 EU 회원국에서는 지하수나 꿀벌 등 수분매개자에 미치는 영향과 같이 환경적 기준까지 고려해 대상 농약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특정 농약의 EU 내 승인 여부나 환경적 고려가 수입품의 생산 방식과 시장 접근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면 EU와 다른 규제체계를 가진 교역국에서는 상당한 적응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 EU 공동연구센터(JRC)의 영향 분석 결과에 의하면 이 개정안에 따라 금지 대상이 될 수 있는 18종의 농약은 235개 품목과 86개 수출국에 영향을 미치며, 제3국에 EU가 승인한 대체 물질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생산 비용은 약 20~40% 인상된다.
이러한 규제에 대해 제3국들은 한목소리로 공급망 전반에 심각한 복잡성을 가져올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특히 미국, 캐나다, 호주 등 대EU 농식품 수출 규모가 큰 국가들은 MRL 개정이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수입 허용 기준 설정의 기본 원칙과 WTO SPS 규정에 부합하지 않으며, 농산물 무역을 제한하고 다자간 무역체계와의 일관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농업인들의 도구를 축소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규제 대상 농약들은 이미 수출국에서 안전성과 합법성이 검증된 도구이며, 농약은 국가별·지역별 해충 문제와 농학적 조건, 계속 변화하는 기후 조건에 맞춰 설계되는데 EU가 일방적 기준으로 MRL을 0으로 낮추거나 철회하면 농업인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할 필수 대응 도구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수확량 감소, 해충 발생 및 전 세계 식량 공급망 불안정으로 이어지며 결국 최종 소비자의 비용 부담으로 귀결될 우려가 크다.
식품 안전에서 식품 사슬 전반으로 규제 영역 넓어져
원료 → 패키지까지 농식품 체인 전반에서 대응할 필요
이러한 규제환경 변화는 식품 안전 분야에만 머물지 않는다. EU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식품 사슬 전반에서 지속 가능성 전환을 유도하며 수입품에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고자 한다. 농산물의 생산과정에서 어떤 농약과 동물용 의약품을 사용했는지, 원료가 어디에서 생산됐는지, 공급망에서 산림 훼손이 발생하지 않았는지, 생산국의 환경·사회적 규정을 어기지는 않았는지, 최종 제품이 어떤 포장재에 담겨 유통되는지까지 규제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아울러 EU 집행위는 수입 식품이 규제를 준수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을 강화하기 위해 비EU 회원국 대상 농식품 체인에서의 감사도 확대할 계획이다. 2027년 EU의 식품 및 수의품 감사 계획을 보면 회원국 대상 감사 비중은 45%로 이전보다 감소한 반면, 제3국 현지 감사 횟수는 2025년 대비 두 배 이상(107%) 늘고 국경 검사도 60% 늘릴 계획이다. 이처럼 식품 규제 방향이 EU 역내에서 제3국 수입 관리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부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농업 통상정책 변화에 맞춰 EU 규제가 국제 규정에 부합하는 방향에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설계될 수 있도록 대응해 나가고 있다. 이제 EU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수출기업들도 제품 설계 단계에서 원료부터 용기에 이르기까지 전체 사슬의 관점에서 EU 규범의 방향을 이해하고 준비해야 한다. EU의 규제를 잘 활용한다면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예를 들면 EU 산림전용방지규정(EUDR)은 대표적인 농업환경 규제지만 베트남 최대 커피 생산지의 한 협동조합은 선제적으로 물류·인증 기관 및 글로벌 유통사와 협력하는 등 EUDR을 적극 활용해 EU 수출량이 20% 증가했다. 또한 위치 추적성이 인증된 원두에 대해서는 프리미엄을 받는 등 이를 수익성 제고의 기회로 삼고 있다. EU 농업통상 여건과 규제 방향을 이해하고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질 것이다.
높아진 유럽 식탁의 문턱,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로 만들려면 | 나라경제 |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 상세한 내용은 첨부파일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