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 인턴] 세계를 향한 밑거름
세계를 향한 밑거름
이름 : 김재우
국가 및 지역 : 남아프리카 공화국, 마다가스카르
기업명 : KOREAN MOTOR SPARES
인턴기간 : 2018. 12. 06 ~ 2019.0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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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보자, 수없이 깨져보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씀을 부모님께 많이 들으며 자랐다. 한국이라는 좁은 땅보다는 더 넓은 세상,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더 많은 일을 경험하고 싶었다. 혼자만의 힘으로 해외 취업을 하기보다는 도움을 받을 곳을 찾던 중, 대구에서 실시했던 한상 인턴십 설명회에 참석했다. 재외동포재단의 아낌없는 지원, 사후관리, 수료자의 소중한 경험을 듣고 '바로 이것이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수많은 나라에서 모인 한상 기업들은 더 넓은 세계를 보여주려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세계를 무대로 뛰어다니는 내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 기회를 꼭 잡고 싶었다.
대구에서 실시된 한상 설명회에서 관계자분의 개인적인 경험과 가이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국 취업 시장만 보기보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세계의 수많은 직업이 날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은 나에게 확신을 주었다. 기회를 널리 알리려는 한상의 노력이 세계를 향한 나의 꿈을 시작하도록 도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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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 만남]
한상 홈페이지에서 KOREAN MOTOR SPARES라는 회사 이름을 보자마자 '이 회사에 무조건 합격한다'라는 확신을 가졌었다. 2015년에 대학 졸업 논문으로 자동차 시장에 대한 글을 썼었는데, 그당시 KOREAN MOTOR SPARES 김진의 사장님의 7전8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기사에는 남아공에서 사업을 펼치기 위한 꿈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 겪었던 수많은 실패, 좌절, 극복이 담겨 있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다시 만난 KOREAN MOTOR SPARES에 꼭 입사하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자동차와 관련된 경험이 많았기에 이력서 준비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면접은 어떤 질문이 나올지 예상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최대한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 LINKEDIN에서 KOREAN MOTOR SPARES 직원들도 알아보고 한상 설명회에서 만난 수료자에게 찾아가서 이것저것 생각나는 질문들을 많이 했다. 면접에서 어떤 질문이 있었는가, 어떤 질문이 가장 어려웠는가, 인터뷰 분위기는 어땠는가 등등 준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실시했다. 그리고 KOREAN MOTOR SPARES에서 인턴십을 수료 중이던 5기 선배님과 연락이 되어 사장님의 스타일을 대략적으로 파악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영어를 쓰는 국가에서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 바람이 운명처럼 KOREAN MOTOR SPARES와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난 이미 확신하고 있었고 결과는 내 믿음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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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숙소 및 공장> |
[매니저로서 노력]
남아공과 마다가스카르 두 국가에서의 내 업무는 달랐다. 남아공에서는 창고관리, 재고관리, 영업지원이었고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인사관리, 창고관리, 매출관리 등 이었다. 출국 전 남아공에서의 삶을 목표로 했던 것과는 달리, 아이러니 하게도 마다가스카르로 출장을 가서 했던 나의 업무가 더 기억에 남는다. 마다가스카르에서 나는 한 지점의 매니저로 업무를 시작했다. 인사관리와 창고관리가 주된 업무였으며 동시에 가장 힘들고 배울 점이 많았다. 첫째, 인사관리는 사람을 계속 지켜보아야 했다. 단순히 일을 시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나의 지시를 받아들이는가, 일을 끝내려는 노력, 일에 대한 열정을 관찰하고, 어떤 직무가 a라는 직원에게 맞을 것인가 등등 나름대로 많은 고뇌가 필요했었다. 고객 응대, 창고, 비서 등 직무에 맞는 직원들을 예상해보고 실제로 인사 이동도 해봤었다. 적절히 배치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 즈음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했고 그때마다 직원들의 업무를 달리 시켜봤다. 현지인들과 친구처럼 재미있게 지내고 싶은 내 마음을 꾹 참고 일정 거리를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지만 회사의 원활한 process에 기여했다는 자부심도 느꼈다.
둘째, 창고관리는 매일매일 담당 직원과 소통하며 좀 더 편리한 구조를 만들어야 했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직원이라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창고 정리가 필요했다. 자동차 이름을 기준으로 제품 분류, 눈에 띌 수 있도록 적절한 스티커 작업, 위치를 알려주는 이름표 붙이기 등 나의 아이디어만 가지고 진행하지 않고 모든 직원들과 상의 후 결정을 내려 최적의 창고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고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제품은 엑셀 파일로 만들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여 조달에 막힘이 없도록 하고 조금이라도 제품들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그때그때 바로 정리했다. 내 책상에만 앉아있지 않고 창고 안 제품들의 위치를 계속 리마인드하여 창고 직원이 바쁜 상황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도록 노력했다. 수 많은 제품의 종류를 처음 봤을 땐 이것을 어떻게 다 외우고 찾아낼까라는 걱정이 앞섰지만 창고를 계속 둘러보고 직원과 함께 일하다보니 어느샌가 적응이 완료된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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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친구처럼 그러나 확실한 상하관계] 딱딱한 업무 분위기를 싫어하는 성격을 가졌기에 처음 매니저로 일을 시작했을 땐 당황스러웠다. 현지 직원들은 '한국인 매니저'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인이 경직된 분위기를 발산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자동차 부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이것저것 물어보면 마치 로봇과 대화하듯 굳은 자세로 나에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편안해야 무슨 일이든 부드럽게 흘러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런 회사 분위기를 바꿀 필요성을 느꼈다.
첫째, 유쾌한 인재를 찾으려 했다. 우리 매장에는 현지 직원 5명이 있는데 그 중 유머와 센스가 있는 직원을 관찰했다. Chanel(샤넬)이라는 직원이 평소 음악과 댄스를 좋아하여 쉬는 시간 틈틈이 분위기를 바꿔주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샤넬과 얘기를 많이 나누면서 재미있는 농담을 배우고 다른 직원들의 관심사가 무엇이지 파악했다.
둘째, 휴일에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회사에서뿐만 아니라 휴일에도 함께 소풍이나 쇼핑을 모두 같이 한다면 '우리는 함께'라는 마인드를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물론 모두들 가정이 있는 직원들이라 시간을 최대한 조율했다. 대형 쇼핑센터, 레스토랑, 시내의 큰 시장 등등에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현지 음식들을 즐기니 나도 그들의 일부가 되었다는 느낌과 더 가까워진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셋째, 예의를 갖춰 일정 선을 지켰다. 앞서 설명한 두가지를 실행하니 업무 중 상하관계가 무너지는 결과가 생겼다. 가끔씩 나의 질문이나 지시에 불응하거나 대답을 미루는 일도 있었다. 사적인 일도 아닌 회사의 업무이기에 이런 조그마한 일을 바로 해결하지 않으면 회사가 힘들어 질 것을 직감했다. 직원들 한명 한명 관찰하고 기록하여 무엇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까 등 고민한 후 전체 회의 시간보다는 내가 1:1로 조용히 설명하는 것이 더 예의를 갖춘 방식이라 생각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얘기하면 그만큼 부끄러움도 발생하고 직원 사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또한 내가 일방적으로 지시하기 보다는 개인 메세지, 식사 시간 등을 활용하여 나에게 개인적으로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피드백도 받았다. 이러한 방식을 활용하고 직원들을 믿고 격려하니 지식이 부족한 나를 많이 도와주려는 직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국 회사의 한국인 직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매니저라는 직책을 맡아 처음에는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현지 직원들은 최소 2년 이상의 경험을 갖고 있으며 모두들 가정을 꾸린, 나보다 형, 누나들이었기에 두렵기도 하고 자신감이 없어지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나의 꾸준한 노력 덕분인지 직원들도 날 인정해 주고 내가 모르는 부분은 친절히 알려주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확실한 상하관계를 이루어 회사에서의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다질 수 있었다.
<마다가스카르 ANKORONDRANO 지점에서> |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어느 영화에서 본 대사를 소제목으로 썼습니다. 늦은 사회 생활이었기에 조급함과 뭔가 번쩍이는 성과를 내고 싶은 욕심도 컸습니다. 그런데 눈앞에 닥친 저의 업무와 많은 직원들과의 인간관계가 어렵고 두렵게 느껴지더군요. 하지만 이것을 물 흐르듯 부드럽게 해결할 용기와 자신감만 갖춘다면 어려울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계속 해외에서 직무를 수행할 목표가 있었기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조금씩 앞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당연시 되었던 것이 아프리카에서는 제약되는 상황을 마주칠 때, 기대와는 달리 육체적 노동이 많은 부분을 차지할 때, 다른 직원들과의 관계가 조금은 서먹해질 때 등등.. 어느 곳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이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100의 힘듦이 200이 될 수도 있고 50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어려울 문제들을 외국에서 겪어보니 나 자신을 표현할 때 영어를 쓰면서 정확한 의사 전달이 안될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러분이 세계로의 도약을 앞두고 갖고 있는 마음가짐을 다시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감이 넘칠 것임을 저는 믿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언제나 처음 마음가짐을 잊지 마세요. 하루하루는 0.1%의 발전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쌓여 시간이 흐른다면 여러분의 소중한 자산이자 더욱 빛나고 값진 경험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5개월 동안 일했던 ANKORONDRANO 지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