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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지역기구 인턴] 언어의 프리즘 속에서 탄생한 호기심

등록일
2019-09-24 00:29:10
조회수
1788

지구청년 프로그램 체험 수기

이름

심소은

연령대

20대 중반

지원 당시 연령대를 기재(초중후반으로 기재)

참여 프로그램

중남미 지역기구 인턴

활동 기간

[6개월] 20189-20193

활동 지역

[유럽] 스페인 마드리드

지원 경로

외교부 홈페이지 공고

 

1. 언어의 프리즘 속에서 탄생한 호기심

저와 스페인어와의 인연은 대학교 교양수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단순히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언어 수업이 흥미로 변하게 되고 뒤이어 6개월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교환학생까지 다녀오게 된 것입니다. 당시의 저는 전반적으로 스페인어 실력도 턱없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스페인어권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했었는데, 귀국 후 학교 정치경제수업에서 중남미 경제사를, 국제기구 수업을 통해서 중남미 지역기구들을 접하게 되면서 중남미 정치 문화사 전반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학교에는 스페인어 전공과목도 없었고, 중남미 정치 관련 세부 전공이 있던 것이 아니어서 스스로 학습을 개진하기에는 모자란 감이 있었지만 당시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제게는 무엇보다도 이 언어로 연결된 세계 각국의 연결고리와 정체성 대해 탐구하고자 하는 연구 의식이 있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향후 진로 고민에 있어서는 정치외교학 전공을 살리고 싶었고, UN총회 한국 청소년 대표로 짧게나마 활동한 경험이 있던 터라, 사기업보다는 국제기구 인턴을 가장 먼저 떠올렸고 이는 돌이켜보면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요 국제기구들은 석사 학위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 대부분 무급이라는 점, 그리고 개별적 지원과정을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 등을 생각하여 우선적으로 국가에서 주관하는 국제기구 진출사업을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이어서 학교에서 배운 스페인어권 국가들의 정치와 관련된 내용을 활용한 업무를 하고 싶었고, 고등학교 때부터 해온 교외활동의 대부분이 개발협력분야였던 점을 생각하면서 인턴 지원 방향을 설정하였습니다. 20181월 즈음 외교부 홈페이지 공고를 통해 중남미 지역기구 인턴파견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20182월부터 준비를 시작하여, 필기시험과 면접을 거쳐 6월 마드리드의 SEGIB(스페인어로는 세힙이라고 읽습니다)에 최종 합격하였습니다.

 

2. SEGIB (Secretaría General Iberoamericana) 소개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Comunidad Iberoamericana)는 이베리아 반도와 중남미 22개국의 문화, 언어적 일체성을 기반으로 제반 분야 협력 및 교류 증진을 위해 출범한 스페인어, 포르투갈어권 국가들의 모임입니다. 현재 옵서버 국가(Observador Asociado)는 벨기에, 이탈리아, 필리핀, 모로코, 네덜란드, 프랑스, 아이티, 일본까지 8개국에 더하여 2016년에 한국이 옵서버로 승인되었습니다.

제가 일한 곳은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의를 비롯한 기타 회의체들(Conferencia Iberoamericana)의 사무국이며, 마드리드의 사무국은 정상회의 선언문의 내용 준비, 의제와 관심 사항 등을 사전에 준비하게 됩니다. 정상회의 업무 외에도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의 모든 협력 업무는 마드리드의 사무국을 거치게 됩니다.

 

3. 대외협력국(Relaciones Externas) 담당 업무

제가 소속되어 있던 대외협력국(Departamento de Relaciones Externas)에서는 주로 옵서버 국가, 옵서버 기관, 옵서버 참여 희망 국가 및 기관, 유럽연합과 국제연합 등 모든 유관기구와의 관계를 유지하며, 기관 핵심 사업과 관련된 국제관계 일정들을 숙지하고 준비하며, 중남미 정치 상황을 시시각각 업데이트 합니다. SEGIB을 방문하는 모든 기관 및 인물들을 맞이하는 첫 관문이기도 합니다.

          노르웨이 국립외교원 방문단 행사 참석 주스페인한국대사관-SEGIB 공동세미나 연사 대외협력국 Maria 국장님과 함께

다양한 업무를 진행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 하나를 소개합니다.

 

[한국 정부와의 협력 사업]

 

2016년 한국은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에 옵서버 국가로 가입한 이후, SEGIB과 상당히 다양한 행사들을 주최해왔습니다. 특히 제가 이 기관에 인턴으로 파견될 수 있었던 것도 한국이 옵서버로 가입하며 체결한 양해각서에 따른 것이며, 인턴 파견 사업이 SEGIB과 한국간 교류의 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1월부터는 SEGIB과 한국의KDI가 함께 지식공유사업(KnowledgeSharing Program)을 추진 중에 있는데, María 국장님께서 대사관과의 회의에 지속적으로 참여시켜 주셔서, 본 사업에 일부 기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선 기획재정부에 송부하는 영문 사업 제안서를 작성하였고, 기관 내 중소기업 고문으로 계신 Esteban씨와 함께 타당성 조사 번역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4. 마드리드에서 살아가기

스페인은 한국 사람들을 비롯, 전 세계 사람들이 매해 수없이 방문하는 최고의 관광 국가입니다. 예능 프로그램들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스페인이 갖고 있는 무궁무진한 관광자원은 스페인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스페인의 기업문화와 생활여건은 한국과는 대척점에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무척 다릅니다. 기업문화의 경우는 확실히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합니다. 복장에 대한 규제도 없을뿐더러, 상사와 직원이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매달 직원들의 생일파티를 함께하고, 퇴사자가 있으면 모두 파티를 열어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9시가 출근시각이지만 모두가 10시 넘어 나타나고(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2시부터 3시 반까지 점심식사를 하고 나면 4시 반까지는 쉬면서 페이스를 올립니다. 이에 더해 금요일에는 2시까지 단축근무를 진행합니다. 겨울에는 크리스마스와 동방박사의 날까지 이어지는 긴 연휴, 그리고 연휴를 맞이하는 각종 파티들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 12월 중순 즈음에는 각 부서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식사를 했고, Grynspan 사무총장의 집에서 파티가 열렸습니다. 직급과 직위에 상관없이 모두 함께 춤추고 노래 부르는 즐거운 기운 속에서 SEGIB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한껏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빠르게에 익숙했기에 천천히가 기본값인 스페인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저 역시 비슷한 일 효율에 스트레스 없이 회사를 다니게 되니 이와 같은 기업 문화는 본받을만한 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서에서 열어준 마지막날 퇴사파티 우리기관 크리스마스 파티

5. 낯선 땅 두드리기

 

6개월의 인턴 생활을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라, 스페인에서 할 수 있어 참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막연히 여행해보고 싶은 나라라는 이유로, 발음이 매력적이라는 이유로 스페인어를 배웠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스페인과 인연이 깊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늘 일에는 양면성이 있듯, 인턴 생활이 늘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한국에서 스페인어를 배운 저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업무와 언어 장벽 때문에, 제 부족함이 드러나지는 않을까 하루하루 불안해하면서 늘 긴장하며 생활해 온 것 같습니다. 특히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에는 집에 와서 잠들 때까지도 무척 기가 죽어있었는데, 그 때마다 이곳의 일 자체가 학교 공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 그리고 이곳은 세계무대라는 점, 제 언어와 제 문화가 아닌 곳에서 생활하며 배워가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잘 극복해 나갔습니다. 또 모든 긴장의 원인은 무엇이든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었던 제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많이 비워내는 연습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업무에 있어 더 겸손한 자세로 임할 수 있었습니다.

SEGIB의 인턴으로 선발되기 위해 애썼던 시간들도 한 편의 영화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중간고사와 필기시험 시기가 겹쳐 매일 같이 밤을 새우며 공부했던 순간들, 면접 후에도 떨어지면 어떡하나, 선발 직전까지 매일을 일기장에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하던 순간들이 기억납니다. 이 인턴십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했던 열정, 간절함, 계획성, 인내심 등은 이 인턴십 이후에도 대학원 진학이든, 취업이든 어떤 일을 대하든 저에게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또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업무를 해 본 경험 역시 제 인생과 가치관에 대해 재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나는 매일같이 찾아오는 극도의 긴장감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인가’, ‘전혀 다른 환경의 사람들과도 허물없이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인가, 평소 한국에서는 깊게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자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순간들, 그리고 내적 성장의 과정이 제게는 가장 소중했고, 또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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