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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지역기구 인턴] ILO 중남미 지역본부 인턴십

등록일
2019-09-24 00:23:48
조회수
1258


지구청년 프로그램 체험 수기

이름

홍기현

연령대

20대 중반

지원 당시 연령대를 기재(초중후반으로 기재)

참여 프로그램

중남미지역기구 인턴

활동 기간

188~ 192

활동 지역

페루

지원 경로

외교부 중남미국 페이스북

 

나의 전공은 서어서문학과다. 사회과학도 아니고 상경계도 아닌, 스페인어를 기반으로 한 언어와 문학을 공부하는 학과이기에 왜 국제노동기구인지에 대한 물음을 정말 많이 받아왔다. 인생을 살다가 만나게 되는 기회나 인연을 인생이란 지도에 찍히는 하나의 작은 이라 가정해보자. 결론적으로, 지금 내가 가려는 길은 나의 인생 전반에 찍힌 무수한 점들 사이에서 노동이라는 특정 점과 점을 이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서울지방경찰청 의무경찰로 군 복무를 마친 나는, 수많은 집회와 시위 현장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맞닥뜨릴 수 있었다. 그때 당시에는 부끄럽지만, 시위를 통제하고 관리해야 하는 한 명의 경찰로서 왜 저 수많은 사람들은 한데 모여서 시위란 걸 할까?’ 하는 약간의 짜증과 함께, ‘집회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길래?’ 하며 노동자가 가지는 기본적인 권리들과 이를 지키기 위한 일련의 활동들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대 후 노사관계론강의를 수강하게 된다. 노사 간에 발생하는 이슈들을 기본적으로 노측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풀어나가는 수업이어서 처음엔 약간 거부감이 들었으나, 노무사 출신 교수님의 다양한 경험과 생생한 집회 현장의 후기들을 듣다보니 어느 샌가부터 수업에 흠뻑 빠져들었다. 동시에, 수업을 들으며 노동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이 수행하는 기본적인 활동이기에 확실한 가치가 있겠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평소 국가나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노동 분야를 공부하고 이 분야에 종사하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목표와 공익에 기여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개인적인 가치관과도 들어맞기에 점차 노동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다음 학년도에 스페인어 능력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지구 반대편인 페루 리마에서 한 학기 동안 교환 학생 생활을 하게 된다. 교환 학생이 끝나갈 무렵에 6개월은 스페인어 능력을 향상시키기엔 다소 짧은 것 같이 느껴져 여러 방법을 찾아보다, 스페인어도 연습할 수 있고 실제 근무 경험도 쌓을 좋은 기회를 잡아 멕시코의 법률 사무소에서 인턴으로 6개월간 근무하게 된다. 일하면서 주로 현지 멕시코 변호사님들의 통역 혹은 번역을 맡아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보통 고객사가 기업이었고 소송 관련 자문 등에 통·번역 업무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는데, 특히 인상 깊었던 자문 중 하나는 당시에 자동차 제조사 협력 업체 공장에서 근무하던 멕시코 노동자 중 한 명이 작업 중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있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사 측에서 혹시나 모를 노동자의 소송을 대비해달라는 자문을 요구해온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노동자의 입장에 서서 속으로 분노했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한편으로 사업주의 고민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노측의 입장이 있듯, 사측도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있고 그것을 요구할 권리가 동등하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 노측의 입장에서만 바라보았던 과거와 달리 사측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였다. 그래서 각 주체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상충하는 분야가 바로 노동이며, 그렇기에 노동 분야에서는 각 주체를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하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한 결론과 부합하는 곳곳, 노동 주체 간의 균형을 추구하는 곳이 바로 국제노동기구다. 노동의 세 주체 즉, 노동자-사용자-정부간 힘의 균형을 지향하는 3자 구조가 주요 특징인 국제노동기구는 곧바로 나의 목표가 되었다. 학과 수업과 중남미에서의 1년 남짓한 체류 경험을 통해 스페인어 실력을 꾸준히 향상해왔고, 국제노동기구 종사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기에 중남미 지역기구 파견인턴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내가 속했던 곳은 2017년 말부터 2022년 말까지 진행되는 ILO Oficina Andina 소속의 프로젝트 팀이었다. 미국 국무부의 지원을 받아 페루 정부가 실시하는 국가 계획 중 하나로, 아동 및 미성년자 인신매매 근절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다자간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정부를 돕는 것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목표다.

 

프로젝트 팀은 ILO를 대표하여 국제노동협약 제182조에 의거해 아동 노동을 근절함과 동시에 모든 형태의 인신매매를 정의하고, 특히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를 예방 및 피해자를 즉각 처벌한다는 팔레르모의정서에 근거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다자간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페루 국내의 리마, 쿠스코, 로레토 지역을 거점 지역으로 삼아, 페루 정부의 국가 계획 사업을 돕기 위해 여러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리마, 쿠스코, 로레토 지역의 법제 개선 및 재판관들의 역량 강화 및 인식 개선, 피해자들에 대한 효율적이고 통합적인 보호 및 지원을 위한 정부와 민간 등의 협력 강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예방을 위한 전략 수립, 3가지 세부 목표를 설정하여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프로젝트 팀 내부적으로, 내가 맡은 업무는 다음과 같다.

 

1) 아동 및 미성년자 인신매매 관련 기사 수집(Recopilación)

 

Karina 프로젝트 팀장이 내게 배정한 가장 중요한 업무로, 매일 페루 국내의 아동 및 미성년자 인신매매와 관련된 페루 언론사들의 기사들을 스크랩하여, 어떤 주제의 기사인지 분류한 뒤, 짧게 내용을 요약한 다음, 마지막으로 어떠한 점에서 이 기사가 유용하며 동시에 어떠한 점에서 이 기사는 잘못된 것인지 나름대로 분석을 해서 주석을 다는 일이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특히 현대 사회는 언론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이 상당히 크다는 점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특히 언론사가 고의든 타의든 어떠한 잘못된 정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순간, 사회에 미칠 파급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자체적으로 그것을 감시하고 조정하는 활동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신문 기사에 피해자들을 성노예’, ‘매춘부등 피해자들이 과거의 끔찍한 상처를 떠올릴 만큼 혐오스러운 표현이라든지 비하하는 표현이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표방하는 프로젝트 팀은 이러한 측면을 검열과 수정의 대상으로 삼았다. 따라서 관련 기사들을 아주 세세하게 검토해야만 했다.

 

일을 하면서 최근 페루 국내의 아동 및 미성년자 인신매매 관련 현황이 어떠한지 각 언론사의 동향이나 논조는 어떠한지 분석할 수 있는 계기였기도 했고 기사를 매일 읽다 보니 스페인어가 많이 늘어 개인적으로도 프로젝트에도 유용한 업무였다.

 

2) 프로젝트 모니터링 및 심사(Monitoreo y Evaluación)

 

ILO의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업 혹은 프로젝트가 그러하듯, 사업이 잘 되었나 그렇지 않은가를 평가를 하는 데는 그 평가의 기준을 잘 설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각 세부 활동마다 지표를 설정해 해당 지표의 달성 여부 그리고 달성 정도의 따라 사업의 평가 결과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내가 속했던 프로젝트 팀의 경우 ILO만의 단독 프로젝트가 아니라, 다른 단체와 협업하는 구조이기에 각자 독자적으로 맡는 활동도 있고 단체 간 함께 수행하는 활동도 있다. 따라서 활동마다 세세하고 전문적인 평가 기준과 지표 설정이 요구되었으며, 특히 함께 수행하는 활동에 있어서는 개별 단체와의 긴밀한 협의와 조정이 필요하다.

 

이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Francisco 프로젝트 팀원을 도와 단체별 세부 지표 달성 여부 확인과 함께, 추가로 월별 목표치를 설정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본 업무는 다소 전문적인 분야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이 제한적이었으나, 프로젝트 팀 인턴만 할 수 있는 업무이기도 하고 어떠한 일이든 세부적인 활동 평가 기준 수립이 중요하다는 점을 배울 수 있던 기회였다.

   

ILO와 함께한 6개월 인턴 기간은 많은 것을 느낀 시간이었다.

 

우선, 행복했다. 정말 일하고 싶었던 국제노동기구에서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당당한 한 명의 일원이 되어 관련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지금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그토록 원하던 국제노동기구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구나하고 되뇔 때마다 너무나도 행복했다. 노동 분야의 여러 전문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기관의 동료들과 밥을 함께 먹는 사소한 일상부터, 국제기구다운 굵직굵직한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는 등 6개월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린 것 같이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또한, 치열하게 버텼다. 전 직원 통틀어 유일한 한국인이자 동양인이었기에 때로는 문화적인 차이, 언어적인 문제 등으로 외롭기도 하고 배척당할까 괜스레 두려웠던 적도 있다. 때로는 다소 간단한 업무를 처리하거나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내가 여기 왜 와 있는 걸까?’ 고뇌에 빠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내 자신이었다. 피하고 숨기만 한다고 능사가 아님을, 적극적인 자세라면 막연한 두려움으로 가득찬 과거의 내 예상과는 달리, 대부분 실상은 보기 좋게 예상에서 빗나갈 수 있음을 느꼈다.

 

인턴 마지막 날 퇴근길의 저녁노을을 보며 다짐했다. 지금 ILO와의 이 짧았던 동행을 잠시 마감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다시 국제노동기구와의 멋진 동행을 이어가겠다고.

 

그리고 이번 인턴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것은 비단 이력서에 적힐 국제노동기구 경력 한 줄이 전부가 아니었다. 정말 많은 사람과의 인연을 얻어 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우선 같은 프로젝트 팀의 동료들인 Karina 팀장, Francisco 팀원, Fiorella 어시스턴트 세 명 모두 나를 인턴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격체로 존중해주었다. 다들 자신들의 전문 분야가 뚜렷해서 프로페셔널하게 각자 맡은 바에 충실히 임하지만, 또 같이 일할 때는 시너지를 낼 줄 아는 멋진 친구들이다. 감히 OIT에서 최고의 프로젝트 팀이자 팀원들이라 자부하고 싶다. 또한, 다른 기구와는 달리 혼자서 파견되었기에 충분히 외로움을 느낄 법했지만, 리마에는 KOICA, KOTRA뿐만 아니라 삼성, LG 등 다수의 해외 법인이 있어 그곳에 일하시는 많은 분들을 만나 소중한 추억들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시기, 2018년도 하반기에 중남미 지역기구 인턴 파견 사업에 선발된 동기들과도 페루와 에콰도르, 콜롬비아 등지에서 만날 수 있었다. 때로는 여행을 같이하기도 하고, 때로는 술 한잔 하면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또 때로는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외치며 미친 듯이 놀기도 했다. 능력자라 불러도 손색없는 다재다능한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각자의 출신과 배경은 다르지만, 신기하게도 삶을 살아가는 가치관 등에 있어서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끼며 든든한 동지가 생긴 기분이 들었다. 때로는 행동이나 말하는 부분에서 많이 배우기도 하고, 때로는 열심히 나도 나의 길을 가야겠다는 동기 부여를 주기도 한 멋진 친구들과 함께 같은 기수로 뽑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영광스럽고 감사한 6개월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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