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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V] 이질성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다양성을 품는 것

등록일
2019-09-24 00:13:41
조회수
925

지구청년 프로그램 체험 수기

이름

김민선

연령대

 

지원 당시 연령대를 기재(초중후반으로 기재)

참여 프로그램

UNV 전문봉사단

활동 기간

2018.02.19 현재

활동 지역

코소보 (UNDP in Kosovo)

지원 경로

UNDP - 외교부 2018년 상반기 전문 봉사단 선발을 통한 개별지원

 

이질성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다양성을 품는 것


수기를 시작하며

맨땅에 헤딩하듯 나는 제네바 본부에서 인턴쉽과 컨설턴씨(Consultancy)1년간 경험한 후, 국가의 지원을 받아 코소보에서 일을 시작했다. 짧은 기간에 근무처를 옮기며 많은 것을 배웠고, 특히 국제무대에서 일하면서 내 뒤에 모국이 든든히 버티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 것인지 느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양한 계약 조건과 직위로 유엔에서 일했던 나의 경험이 유엔을 꿈꾸고, 유엔을 바라보고 있는 다른 한국 청년들에게 작지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유엔을 향한 막연한 꿈, 그리고 제네바 본부에서 코소보까지

나는 남들처럼 삶을 송두리 째 흔드는 경험을 통해 유엔 근무를 꿈꾼 적은 없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유엔에서 일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품기 시작했고 그 이유는 그냥 멋있어 보여서라는 아주 단순하고 유치한 동경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선의를 위해 일하고 싶다거나 제가 가진 것을 타인과 나누고 싶다는 포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유엔에 대한 호기심은 대학생 때부터 보다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세계사와 외교정치 분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학부시절 국제관계를 공부했고, 석사학위로는 안보학을 전공하면서 분쟁, 내전, 인종 청소 등과 같은 주제에 익숙해졌다. 그 과정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중재자로서의 유엔, 즉 지속 가능한 평화 구축을 위한 유엔의 임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그 안에 직접 들어가서 배우고 싶다는 호기심과 열망 생겼다. 유엔을 향한 막연한 동경에 호기심과 열정이 더해졌고, 3년 전 나는 무조건 유엔이라는 생각 하나로 평화 구축, 분쟁, 안보와 관련된 유엔 기구들의 인턴십에 수없이 지원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제네바 본부에 위치한 UNITAR (유엔훈련조사 기구)Peacekeeping Training Program이라는 부서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평화의 상징이라는 제네바 본부에서 생애 첫 커리어를 시작한 것은 분명 큰 행운이고 축복이었다. 제네바에서 맡았던 임무 중 하나는 아프리카 내전국으로 파견되는 유엔 평화유지군들에게 지급될 트레이닝 자료들을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일하고 있던 제네바는 이러한 일들, 그리고 이것이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현장과는 괴리가 있었고, ‘무조건 유엔이라며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던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나는 평화구축’, ‘분쟁등의 단어들을 매일같이 접하면서 정작 분쟁을 겪은, 혹은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그 현장에 대한 이해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제네바 본부에서의 근무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내 나는 분쟁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있고, 그것들을 감당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현장을 직접 경험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와중 나에게 내전으로 기억되던 코소보에서 Democratic GovernancePeacebuilding OfficerUNV를 모집한다는 외교부의 공고를 보게 되었고, 망설임 없이 지원하였다. 서류 전형 통과 후 UNITAR 인턴십에 지원했을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질문들을 예상해보며 인터뷰를 준비했다. 인터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상사와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풀어 나갈지에 관련된 질문이었다. 나는 실제로 인턴에서 컨설턴트로 계약을 변경하면서, 상사와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 그 당시 내 상사는 너무 많은 업무량을 혼자 감당해야하는 상황이었고, 내가 계약 연장에 대해 이야기하려 할 때마다 그녀는 언짢은 표정과 말투로 내게 대답했다. 그 당시에는 굉장히 불쾌했고 배려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녀의 상황이라면 나도 충분히 저런 태도를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녀의 거절을 라는 사람에 대한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했고, 상사의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나는 상사와 원활하게 계약 연장을 의논할 수 있었다. 솔직한 경험을 공유해 주어서 고맙다는 답변을 면접관들에게 받았고, 인터뷰가 잘 진행 된 것 같다는 느낌도 살짝 받았다. 서류전형과 인터뷰를 모두 통과한 나는 201711월 말 UNDP 코소보 사무소에서 공식적으로 근무 제안을 받아 12UNITAR와의 계약을 마친 후 20182월부터 UNDP 코소보에서 근무를 시작하였다.

 

코소보에서의 역할

유고슬라비아의 붕괴와 뒤이은 연방국 간의 내전, 그 중에서도 코소보 내전은 20세기의 마지막 참극으로 흔히 기억되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코소보는 2018년 현재 기본적인 사회 시설과 인프라들이 90% 이상 복구 되고, 중간소득국가가 될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높은 청년 실업률, 사회 구성원간의 신뢰와 결속, 통합의 부재, 부정부패, 계속되는 세르비아와의 갈등 등 전쟁이 남긴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여전히 잔존해 있다. 무엇보다 코보소는 2008년에 이미 공식적으로 독립국임을 선포했지만, 여전히 러시아, 중국, 스페인 그리고 세르비아 등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코소보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코소보의 불안정한 국제적 지위는 코소보의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국가 지도자의 역량 부족과 리더십 부재는 코소보에 있는 많은 소수민족들(세르비아계, 보스니아계, 터키계, 고라니계, 집시)이 코소보의 주류 사회로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것을 지연시키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코소보에서 Governance and Peacebuilding Officer로서 내가 맡은 역할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코소보 행정 체제의 개혁을 돕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평화 구축의 일환으로 사회 주류인 알바니아계 코소보인과 다른 소수 민족들 사이의 원활한 소통을 이끌어내어 안전하고 평화가 지속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제외한 다른 발칸 지역의 국가들(보스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처럼 코소보 정부에게도 유럽 연합의 가입 자격을 갖추는 것이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 중 하나이다. 현재 코소보는 유럽 연합에 가입할 수 있는 잠재적 후보 국가의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그 중에서 나는 지방 행정 조직의 역량 강화(Local Governance Capacity Development)와 민주적 거버넌스를 위한 정책의 가이드라인으로서 지방 정부 행정관들의 역량 현황 보고서를 출판하는 일을 도맡았다. 이 프로젝트는 코소보의 지방 행정 자치부와 UNDP의 공동 협력 아래 이루어졌다. 먼저 38개의 코소보 지방 자치구에 있는 1,308명의 지방 행정관과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역량 현황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의 내용은 교육, 경제, 재정, 사회복지 서비스 등 총 12개 분야를 아우르는 것이었으며, 이후 아홉 차례의 포커스 그룹 심층 토론을 거쳐 보고서의 지표가 될 수 있는 자료들을 모았다. 이에 기반하여 코소보 지방 행정 정부의 역량의 현 주소를 분석하며 그에 맞는 정책들을 추천하였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약 9개월 간 작성하였고, 내 상사를 비롯한 UNDP 동료들과 정부기관의 협조로 1211일 마침내 성공적으로 보고서를 출판하였다.

나의 첫 번째 임무가 데이터 분석 및 리서치 능력, 그리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과를 도출해내는 기술적인 역량을 요구하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임무는 코소보의 사회 통합(Social Cohesion)에 관한 일이었다. 유럽 연합의 재정지원으로 UNDP가 직접 행정을 맡은 ‘Inter-community Dialogue through Inclusive Cultural Heritage Preservation’ 프로젝트가 그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총 세 가지의 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종교와 민족에 상관없이 코소보 내에 존재하는 훼손된 유형 문화재들을 복구하는 것, 둘째, 다른 소수민족들이 가지고 있는 무형 문화재의 기술과 지식 보존을 촉진 시킬 수 있는 다양한 시민 참여의 행사를 기획하는 것, 셋째, 코소보 경찰과 함께 각 지방 자치체들이 문화재를 스스로 보존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본 프로젝트의 주요한 대상으로서 7개의 문화재를 최종적으로 선정하기에 앞서, 나는 UNDP 프로젝트 팀과 유럽 연합 코소보 오피스 동료들과 함께 다양한 현장들을 방문했다. 주로 코소보의 각 지역에 어떤 문화재들이 어떠한 이유로 버려지고 훼손되었는지 확인하였고, 문화재가 복구 되었을시 가져올 수 있는 사회 경제적 효과에 대해 각 시(County)의 장들, 지방 관할 문화재청 그리고 종교 단체 리더들과 많은 미팅을 거쳤고, 최종 12개의 후보지를 선정했다. 20만 달러와 18개월이라는 제한된 예산과 시간 내에 가장 효율적인 결과물을 도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각 후보 문화재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 종교, 문화적인 가치는 물론 경제적 가치를 프로젝트 이사회에서 발표하였다. 그 결과 2018711일 이사회를 통해 총 7개의 유적지가 선정되었고, 712일 공식적으로 프로젝트 론칭 행사를 진행하였다.

학습능력, 포용능력 그리고 공감능력

흔히 유엔에서 일하기 위한 필요한 역량으로서 전문성을 많이 언급한다. 한 분야에 깊은 전문성을 지니는 것은 유엔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서 일하든 필요한 것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실제로 유엔에서 근무해본 바, 유엔에는 한 가지 분야의 전문가(Specialist) 보다 넒은 영역의 일을 포괄하고 처리하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인사, 회계 및 조달, 법무 등 경계가 명확한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에게는 각 분야의 전문성이 요구되고 있다. 하지만 그 외에 유엔에서 근무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방면의 업무 처리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유엔에서 일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학습능력, 포용능력 그리고 공감능력이 가장 필수적인 기본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UNDP 코소보 사무소의 Governance and Peacebuilding 부서를 예로 설명해보고자 한다. 우리 부서의 주요한 업무는 크게 세 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안보(Security), 둘째, 법치주의(Rule of Law), 셋째, 거버넌스(Governance)이다. 만약 전문성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거버넌스 팀을 이끄는 매니저는 세 줄기 모두를 아우르는 깊은 지식이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우리는 프로젝트 팀을 별도로 구성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안보 분야에는 실제로 소형 화기/폭발물 확산 방지와 테러 및 폭력적 극단주의에 대응 할 수 있는 구체적 메뉴얼들과 트레이닝을 제공할 수 있는 관련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직원들을 고용한다. 그리고 나와 같이 프로젝트 팀과 유엔 사무소 사이를 업무를 조율하고 관리하는 대다수의 프로그램 레벨의 직원들은 각 프로젝트가 다루는 주제, 그것이 현 국제 정세 혹은 그 나라의 정치에 미치는 영향 등을 폭넓게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분별력 있고 신속하게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이를 기반으로 또 다른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유엔 직원으로서 필요한 역량은 포용능력과 공감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유엔은 다양한 문화와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공간이다. 기본적으로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많은 동료들과 한 마음으로 일해야 하는 환경이므로 다름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며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능력과 공감능력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유엔 직원은 언제든지 유엔 본부를 벗어나 상황과 환경이 천차만별인 근무지로 파견되어 나갈 수 있다. 수많은 국가의 유엔 사무소에서 원활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근무지 로컬의 정치, 문화, 사회, 역사에 대해 진심으로 알아가려는 열린 마음과 소통을 통해 이해하려는 섬세한 공감능력과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어떤 전문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위의 학습능력, 포용능력, 공감능력을 겸비하지 않는다면 유엔 직원으로서 역량을 펼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유엔이여야 하는가?

유엔에서 일해 온 2년 간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왜 유엔이여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나는 유엔에서 일하는 것이 언제나 ()’을 추구하고 가슴을 뛰게 하며 보람을 주는 일이라고만 말하고 싶지 않다. 많은 유엔 기구들이 겪고 있는 재정적인 문제 탓에 유엔은 공공의 선이 아닌 도너(Donor) 들의 입맛에 따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근로자들에게 양질의 계약 조건을 제공하는 데 실패하기도 하며, 유엔으로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침묵하는 모순을 범하기도 한다. 하지만 2년간의 경험을 통해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유엔에 희망을 걸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와 같은 결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점은 유엔이라는 환경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이었다. 자본으로 인한 획일화, 세계화로 인한 다양성의 종말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를 압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어떠한 기준에 근접하는 하나가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편리함과 안락함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편리함과 안락함을 위해 우리는 나와 다른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그 다름과 공존하기 위한 노력을 귀찮은 것쯤으로 여기는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나와 이질적인 것을 적대시하며, 나에게 익숙한 것만 이해하려는 편협한 시각을 가지게 할 것이다.

유럽에서 10년을 살았던 나에게 제네바에서 경험한 유엔 본부는 비교적 익숙한공간이었다. 반면 코소보라는 필드에서 경험한 유엔은 내게 익숙한 것들에서 멀어지는 용기를 주었고, 나와 다른문화와 역사에 마음을 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다양성을 품기 위해서는 먼저 이질적인 상대의 역사와 문맥을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열고, 그것을 포용하려는 섬세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내전과 인종 청소를 겪은 코소보계 알바니아인들의 트라우마, 역으로 전쟁의 가해자로만 불리는 세르비아의 입장, 코소보 영토 안에 있지만 세르비아의 주권만을 인정하는 코소보계 세르비아 인들, 그리고 이들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가 코소보 사회에 미치는 영향. 1년이 안 되는 짧은 시간동안 코소보라는 나라에 있는 다양한 입장들을 이해하기 위해 보낸 고민의 시간들이 나를 얼마나 성장하게 했는지를 돌아봤을 때, 나는 이제 내 스스로에게 왜 유엔이여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줄 수 있게 되었다.


글을 마치며

지난 2년 간 유엔에서 일하며 내가 발견한 것들, 그리고 그 경험들을 통해 내가 깨달은 것들이 유엔을 꿈꾸고 있는 다른 청년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다. 막연함이 호기심이 될 수 있고, 그것이 또 간절함이 될 수 있는 경험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과 경험들을 하게 될, 유엔을 꿈꾸는 수많은 이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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