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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공관 현장실습원] 경험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등록일
2019-09-24 00:10:52
조회수
1462

지구청년 프로그램 체험 수기

이름

박진숙

연령대

20대 초반

지원 당시 연령대를 기재(초중후반으로 기재)

참여 프로그램

재외공관 공공외교현장실습원

활동 기간

2018.08-2019.02(6개월)

활동 지역

세르비아(베오그라드)

지원 경로

온라인 매체를 통한 정보 획득

 

- 경험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

 

인생은 타이밍? 해외는 타이밍!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 이골이 난 아이였다. 제주도부터 서울까지 전국구로 이사를 다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덕분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던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면 꼭 해외를 가보리라 결심했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교의 지원을 받아 해외로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알아보았고, 겨울방학을 이용한 단기 어학연수 프로그램과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지원 자격을 충족하자마자 일단 넣고 보자라는 마음이었다. 그 덕에 대학 생활 동안 캐나다 2, 러시아 1년을 경험하고 나니 이번에는 공부하러가 아니라 일하러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또다시 해외 인턴을 목표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해외 인턴은 무급 인턴이라 상당한 돈을 지출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만한 돈도 없었거니와 인턴이지만 을 하러 가는 건데 돈을 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해외 인턴을 찾으려니 그야말로 사막에서 바늘 찾기였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지구 청년 프로그램 중 하나인 재외공관 공공외교현장실습원이었다. 항공비, 생활비, 비자 실비 등을 지원받으며 6개월 동안 일할 수 있다니! 바로 이거다 싶었다. 전년도 지원공고를 통해 지원 자격 및 서류 항목을 미리 확인하여 준비했고, 2018년도 지원 공고가 뜨자마자 CIS권 국가를 1,2 지망으로 작성하여 지원했다. 면접까지 모두 마친 후 떨리는 마음으로 최종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결과 발표 당일, 오후 3시쯤 되었을까.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데, 이상한 예감으로 전화를 받았다. 외교부였다. 알고 보니 합격은 하였으나 원하던 지역으로 배정되지 않아 파견 의사를 묻고자 미리 연락을 주신 거였다. 배정된 지역은 세르비아였다. 이름도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나라였지만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무조건 예스를 외쳤다. 그렇게 합격이 결정되었다.

 

전화위복, 위기를 기회로

전화를 끊고 나니 막막했다. 일단 가겠다고 말은 뱉었는데, 세르비아라는 미지의 나라에 가서 숙소를 구하고 살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의미한 걱정이었다. 오히려, 지망 국가가 아닌 세르비아에서 현장실습원으로 근무하게 된 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세르비아에서의 위기()는 바로 영어였다. 지구청년 프로그램에 지원하면서 영어가 난관이라니? 의아하겠지만 그렇다. 전공인 러시아어를 살리기 위해 CIS권 국가를 1,2지망으로 지원했기에 영어는 구색만 맞춘 정도였다. 일상 회화는 크게 지장이 없지만 업무를 영어로 수행하기까지는 영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세르비아로 파견되면서 일상생활은 물론 대사관에서의 업무 진행까지 영어를 사용해야 했다. 나는 현지 언어인 세르비아어를 못하고, 대사관 내 현지 직원들은 한국어를 못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다른 대사관에는 한국어를 잘하는 현지 직원이 있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내가 근무했던 대사관에는 단 한 명도 한국어를 할 수 있는 현지 직원이 없었다. 문제는 나의 구색만 맞춘 영어 실력이었다. 영어회의 내용은 어찌저찌 이해하는데, 입이 잘 트이지가 않았다. 흔히 말하는 비즈니스 영어를 전혀 모르다보니 혹여 실수를 할까 두려웠던 탓이다.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사수를 만난 덕분이었다. 영어회의 때마다 서기관님과 연구원님이 사용하는 표현들을 귀 기울여 들었고, 영문으로 글을 작성한 후에는 반드시 피드백을 받았다. 두 분 모두 피드백을 요청할 때마다 싫은 내색 없이 봐주신 덕분에 격식을 갖춘 영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영어 사용에 민감한 외교관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큰 기회()였다.

이 덕분에 영어 실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대사관 주최 행사에 지원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고 장학금 박람회에 참여하여 정부초청 외국인 대학원 장학생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등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말하는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영어를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이제는 영어로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화위복이었다.


WHAT보다는 HOW

만약에 합격해서 갔는데 6개월 내내 복사 같은 일만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내가 실제로 현장실습원 면접 때 받았던 질문이다. 그때야 복사도 배울 점이 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없는 일도 만들어서 해보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지만 속으로는 왜 그런 질문을 하나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실습원이 되어 업무를 막 시작하자 이 질문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재외공관에서 현장실습원은 계륵 같은 존재다. 재외공관의 입장으로서는 해마다 상반기 혹은 하반기에 올 수도 있지만 안 올 수도 있는 존재가 우리들이다. 그러니 현장실습원이 하는 업무란 정해진 것이 없고, 올 때마다 없는 임무를 만들어서 주어야 하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근무를 시작하고 첫 일주일은 할 게 없었다. 같이 일을 하게 된 연구원님은 점차 일이 많아질테니 지금은 편히 적응하라고 하셨다. 그것도 하루 이틀 일이지, 일주일 내내 일이 없으니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가 정말 복사만 하다 6개월이 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일을 맡게 된 것은 문화 행사 주간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공공외교의 일환으로 대사관에서 주최하는 문화 행사가 많았고, 일손이 필요해지면서 나의 업무도 생긴 것이다.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대사관 운영 SNS 관리, 초청장 발송, 설문 조사, 사진 촬영 등의 간단한 업무였다. 성실하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이기에, 이런 일을 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까지 보며 힘들게 외국까지 나와 있나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업무들을 통해 대사관에서 주관하는 문화 행사의 참가자가 아니라 주최자의 입장에서 사고할 수 있었다. 하나의 문화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 과정이 필요하고, 행사가 끝난 뒤에는 어떤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지를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이다.

업무에 익숙해지면서 대사관에서 어떤 목적으로, 어떤 주제의 문화 행사들을 주최하는지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교환학생 기간 동안 참여했던 문화 행사들이 떠올랐다. 규모는 다르지만 한국을 알린다는 점에서 대사관에서 주최하는 문화 행사와 비슷한 면이 있었기에,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문화 행사에 관한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미 대사관에서 진행 중이거나 예정된 문화 행사가 10개가 넘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렇게 바쁜 와중에 아이디어를 내도되는 건지 망설여졌다. 고심 끝에 서기관님께 이에 대해 말씀드렸다. 시킨 일이나 제대로 하라며 꾸중을 듣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서기관님은 흔쾌히 기획안을 만들어 제출해 보라고 하셨다. 올해가 아니라도 내년 문화 행사 기획에 도움이 될 거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그렇게 난생 처음으로 행사 기획이라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당시 대사관에서 진행하는 문화 행사는 대부분 공연, 영화 상영, 패션쇼 등을 주제로 한 관람형 문화행사였다. 기존의 문화 행사와의 차별성을 위해 서예, 한복 종이접기, 탈 만들기 등 체험형 문화 행사를 기획하여 제출했다. 이 중 서예와 한복 종이접기 아이디어가 채택되어 실제 행사에 반영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실제 행사에 반영되기 위해서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를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아이디어가 적용된 실제 행사 포스터

이를 통해 깨달은 점은 무엇을 하느냐 보다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작은 일을 한다고 불만만 가졌다면, 그 과정에서 어떤 것도 배울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정해진 업무가 없었기에 주어진 일에만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일을 개척할 수 있었다.

현장실습원에 선발된 직후, 일은 시작도 안했는데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았다고 생각했다. 프로그램을 끝내면 수료증이 나오니 그것이 스펙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큰 착각이었다. 스펙은 결코 경험 그 자체가 될 수 없고, 그 경험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재외공관 공공외교 현장실습원으로 근무하며 얻은 가장 큰 교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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