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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 서른의 문턱에서 나는 베를린에 있었다

등록일
2017-05-22 02:12:30
조회수
2088

서른의 문턱에서 나는 베를린에 있었다

 

이미화

 

(전체 수기 내용은 붙임 파일을 참고해주세요.)

 

‘워킹홀리데이’
타닥타닥. 낯선 풍경의 카페 안에서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던 그때부터 나의 독일워킹홀리데이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에 단 한 번뿐일 수도 있는 외국에서의 생활을 결심하는 데에 좀 더 드라마틱한 전개를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우연에 의해 인생이 좌우되는 경험을 종종 하곤 한다. 그날, 베를린의 한 카페에 앉아 인터넷을 검색하기 전까지는 독일에서도 워킹홀리데이가 가능하며 27세인 내가 지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 역시 그러했다.

 

4년간 다니던 마케팅 대행사를 그만두고 유럽여행을 떠났던 작년(2014년) 여름, 나는 후배가 ‘오페어’로 일하고 있는 베를린에 한 달간 머물게 되었다. 당시 나는 일행이 없었다면 여행 일정에 베를린을 포함할 생각이 없었는데, 이유는 베를린이 배낭여행객들에게 그리 매력적인 도시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첫 번째 이유로는 일정을 짜기에 다소 난감한 위치, 두 번째는 정보, 세 번째는 이미지였다. 베를린은 유럽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9개국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독일 여행책자에서도 베를린은 2박 3일이면 충분한 코스 정도로만 안내되어 있었고, 그마저도 지루하다거나 우울한 곳이라 평가되어 있었다. 그렇게 꺼림칙한 상태로 일행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베를린으로 향한 나는 오히려 베를린이라는 도시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전쟁, 분단, 히틀러, 회색, 무뚝뚝함, 융통성 없음’등의 단어들이 연상되던 베를린은 전쟁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며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건강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도시였다. 직접 눈으로 본 베를린은 회색이 아닌 초록으로 빛나는 도시였다. 거리마다 나무와 꽃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넓게 트인 공원과 소박한 카페에서는 삶의 여유가 묻어났다. 다른 관광도시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일상이 참 매력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만 된다면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결국 나는 런던으로 가는 항공권을 취소하고 베를린에 더 머물던 중, 후배의 ‘워킹홀리데이를 한번 알아보라.’는 말에 그 길로 카페로 향했다.  

 

(중략)

 

적지 않은 나이에 독일 행을 결심한 탓에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예정대로라면 독일에서 서른을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유독 나이에 민감한 우리나라의 정서상 결혼도 안한 20대 후반의 여자가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심지어 영어권 국가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나라도 아닌 독일을 선택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반면 지옥 같은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외국으로 향하는 것에 대해 무조건적인 부러움을 표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독일로 떠나오기 2주 전, 독일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하게 된 과정과 앞으로의 할 일들에 대해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발표 후 나는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외국생활을 동경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독일 행을 결정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이외의 국가에서의 삶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우연한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무책임한 선택으로 남기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사전 준비는 했다. 하지만 외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 중 뚜렷한 계획이나 비용 마련에 대한 대책을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여기서 ‘나처럼 하던 일을 그만두고 떠나고 싶다면 떠나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떠나지 않으면 겁쟁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유학원 등의 홍보문구만큼 무책임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상황을 잘 파악해본 후에, 떠날 수 있다면 인생에 단 일 년쯤은 투자해 볼 만한 경험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단, 본인이 원하는 해외에서의 꿈같은 나날들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활은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을 마련하거나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수준의 언어실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외국생활이 어떨지는 얼마나 준비를 하고 떠났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첨부파일
독일 수기.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