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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기구 인턴] 낮아짐을 배운 중동의 고독한 광야 생활

등록일
2019-09-24 00:06:21
조회수
990

지구청년 프로그램 체험 수기

이름

민요한

연령대

 

지원 당시 연령대를 기재(초중후반으로 기재)

참여 프로그램

에너지기구 인턴

활동 기간

2015.12015.7

활동 지역

UAE 아부다비(IRENA)

지원 경로

외교부 홈페이지

 

 

낮아짐을 배운 중동의 고독한 광야 생활

 

중동으로의 첫 발, 국제기구 경험

외교부 에너지안보과의 지원으로 아부다비에 가게 되었는데 당초 예상과는 달리 UAE 정부의 비자 처리가 1개월 정도 지연되어 12월이 아닌 이듬해 1월에 출국하게 되었다. UAE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아부다비 재생에너지 도시 마스다르에 위치하고 있는 국제 재생에너지 기구(IRENA)에서 재생에너지 기술, 정책, 파이낸싱 관련 정부 및 민간 업체 컨설팅, 조달 및 ICT 지원 업무를 했다. 계속되고 있는 인구증가에 맞춰 에너지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삶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는 인구도 더불어 늘고 있는 가운데 기후변화 문제로 IRENA 에서는 관련 문제인식 및 해결방안을 위해 연간프로그램을 수립하고 컨설팅 업체 및 각 회원국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연구하고 연구결과를 배포하고 있다. 덕분에 여러 굵직한 국제적인 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아래와 같다.

WFES (World Future Energy Summit) IRENA 총회 기간에 맞추어서 UAE 정부에서 주관하며 세계 에너지 민간 및 공기업에서 출동하여 제품 및 서비스 홍보, 그리고 에너지 관련 이슈에 대해 주제별로 토론 및 정보를 공유하는 기회의 장이 되는 국제적인 행사다. 이집트 대통령이 초대받아 기조연설을 하고 미국 전 부통령 엘고어가 행사에 나와 시상을 받는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있었다.

IEWInternational Energy Workshop) - 세계 에너지 석학 약 150명 참석에 오전 중엔 키노트 대표자 3명이 발표하고 점심 식사 후 오후엔 각 세션, 주제별 발표가 진행 되었다. 본 행사에 참석하여 현재 에너지 동향 및 관련 현황들을 폭넓게 접할 수 있었다

총회 (Assembly) - 1년에 한번 있는 주 행사로 160여 회원국에서 참석하여 재생 에너지 관련 동향 및 본 국제기구 활동사항, 운영실태, 전략, 앞으로 나아갈 방향 제시 등 굵직한 주제를 가지고 논의를 진행한다. 6개 언어 (중국어, 영어, 아랍어, 프랑스어, 일본어, 스페인어) 통역기 이용 가능한데 일본어의 경우 이번 총회 의장이 일본인이어서 포함시킨 것 같다. 144개국, 개별 국제기구 및 민간부문(private sector)에서도 참가하여 발언하는데 각 나라별 3분의 시간이 주어지고, 시간 초과 시 경고한다. 사우디아라비아나 UAE의 경우 시간초과에도 불구 할 말은 다하는 것으로 보였고, 일본은 자이카(JAICA)ODA 실적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재정적으로 많이 기여하는 나라일수록 기구 내에서 힘을 실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자이카를 대표하여 오신 분과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차분하고 겸손한 인상을 받았다.

현지 삶에 적응

아부다비는 집값이 비싸다. 그래서 대부분 불편하지만 좁은 방에 함께 산다. 그러함으로 느끼는 여러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수면 방해 - 나 역시 재정도 아끼고 현지 외국인과 어울려 살았다. 그 중 한 친구는 새벽 3시에 퇴근하고 방 안에서 불 켜고 인도 특유의 음악을 틀고 전화 통화하고 밥 먹다가 아침 6시 경이 되어야 잠이 든다. 가끔은 전화통화를 하다가 울기까지 한다. 이렇게 외지에 나와 가족에게 돈을 부치기 위해 힘겹게 일하는 그 상황이 이해가 가기도 했었지만 하필 난 이층 침대 위층을 사용하고 있어서 조명을 켜면 눈앞에 바로 비추는 빛과 시끄러운 소음으로 매일 밤 3-4번 깰 수밖에 없었고 이 아이에게 양해를 구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별 탈 없이 지내기에 이것은 오히려 내가 아이들과 같이 적응하고 그들의 문화에 동화해야 할 것으로 마음을 바꿔 스스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도록 노력하였다. 수건을 네 겹으로 말아서 눈을 덮고 귀에 귀마개를 단단히 막는 등의 수고를 통해 그나마 잘 수 있게 되었다.

빈대(Bed Bug) - 여러 명이 함께 지내다 보니 빈대를 경험하게 되었다. 미국에 있을 때도 이것 때문에 몸살을 앓았는데 여기 빈대는 한방 무는 것이 아니라 기어 다니면서 줄지어 물어 문 자국이 선으로 나타났다. 배꼽 아래, 허리 쪽으로 계속해서 물려 티셔츠 벗고 보니 어깨에 기어 다니고 있는 것을 발견해서 바로 잡았다. 한동안 이 벌레 때문에 고생을 했으나 다행히 잡고 난 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서러움 - 며칠간 아팠던 적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 몸이 무기력하고 회사에서 업무 시작하면서 평소 좋지 않은 관절 부위부터 아파오기 시작했는데 비 올 때 어른들이 삭신이 쑤신다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열도 나기 시작하고 어지럽고 면역이 떨어져서 그런지 누가 한방 치면 그냥 나가떨어질 것 같았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근처 체육관에 가서 누웠다. 마땅히 누울 자리가 없어 커다랗고 무식하게 생긴 덤벨, 바벨 사이에 누웠는데 혹 운동기구 용접부위가 약해 바벨이 내 몸 위에 떨어지지 않을까, 혹 떨어지면 다리나 배가 단순 멍만 들까 아니면 뼈까지 부러질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잠 들었다. 체육관에선 큰 소리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운동하러 온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에 중간에 깨기를 반복하다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렇게 이틀간 몸은 아픈데 쉴 곳이 없는 외지에서 서러움을 느꼈다. 사무실에도, 체육관에도 심지어 매일 잠을 자는 곳도 쉴 만한 환경이 되지 않았다. 같이 사는 친구들에게 아프다고 말할 기운도 없었다. 밤중 훤한 조명아래 방에서 밥 먹고 통화하고 음악 틀어 놓는 환경에 이것도 몸이 정상일 때야지 그나마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몸이 아프니까 견디어내기 참 힘들었다.

기다림의 미학 - 여기 현지 사람들은 대부분 자가용을 이용한다. 개발도상국에서 돈을 벌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사회적 약자가 대부분 이용하다 보니 편의성은 많이 떨어지고 시스템도 비효율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고 이용하려고 하면 어느 정도 시간소요를 감안해야 했다. 하루는 두바이에서 아부다비로 오는 표 사는데 40분을 기다리고 표를 사고 나서도 많은 승객으로 인해 버스를 2시간 이상 기다린 적도 있었다. 기다리던 줄에서 잠깐만 벗어나도 맨 뒤에서 다시 줄을 서야 했기에 2시간 내내 기다리는 동안 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버스표를 구입하러 줄 서서 기다리며 처음엔 이런 대중교통 시스템에 불평하다가 문득 기다리는 것 자체도 삶인데 이런 기다림을 단순 낭비라고 여기는 내 자신에 대해 반성해 보게 되었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낭비라고 지금까지 여겨 왔던 것 같다. 기다림에도 의미가 있다. 순간에 충실하고 기다리는 것도 나름 즐기면 된다. 어느 순간에도 충실히 임하면 어느 것 하나 낭비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느꼈다.

황사 - 새벽 5시 반 달리기를 하러 나갔는데 온통 뿌연 안개 투성이다. 느낌이 다른 게 가만히 보니 미세 모래로 숨이 탁 막혀 바로 집에 들어왔다. 회사 버스를 타기 위해 잠깐 걸었는데 머리와 옷에 모래 먼지로 하루 종일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모래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아 조심 운전을 하며 무사히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후 3시 쯤 되니 걷히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초미세 먼지와는 달리 순수 모래로 호흡기에서 걸러지기 때문에 초미세 먼지만큼 걱정할 것은 아니라고 한다.

돕는 손길 - 도시락을 준비할 겨를이 없어 밥만 싸가지고 출근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인도출신 동료가 마침 남은 반찬이 있다고 주는 덕분에 반찬과 함께 먹을 수 있었다. 자주 먹을 것을 챙겨 주셔 감사했다. 하루는 이른 새벽 요리를 하려고 보니 가스가 떨어져 할 수가 없었으나 같이 사는 스리랑카 친구 덕분에 아침은 시리얼, 우유로 해결할 수 있었다. 출근 하려고 하는데 부재 중 전화가 와서 확인해 보니 외교부 지원으로 같이 온 친구가 지내는 한인 게스트 하우스 주인아주머니께서 김밥을 보낸다고 따로 점심 도시락 준비하지 말라고 하신다. 가스가 없는 것을 아시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그때그때 내가 생각지 못하게 필요할 때 돕는 손길이 있었다.

밤중에 쫓겨남 - 새벽 1시경 필리핀 출신 집 주인이 나타나 다른 곳으로 방을 옮기라고 독촉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자다 일어나 정신없이 짐을 싸서 새로운 집으로 옮겼다. 말로는 더 크고 전망 좋은 집이라고 하더니 막상 옮기고 나니 여기저기 공사 중에 대문은 고장 나서 항상 열어놔야 하고 부엌에 물, 가스는 안 나오고 냉장고가 없어 음식 보관도 불가, WIFI 는 당연히 없거니와 세탁기도 없어 빨래는 힘들고 무엇보다 바닥에 공사판 먼지와 냄새로 머리가 아팠다. 이사가 끝나고 나니 새벽 4시여서 일단 바닥에 장판 깔고 2시간 정도 잠을 청했다. 같이 옮겨 간 인도 친구 2명은 불평하며 이른 아침에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다. 밤중에 모든 짐을 싸서 쫓겨나는 경험과 내 신세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새로 옮긴 집은 11층에 상권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어서 전망이 확 트이고 차 소리가 시끄럽다기보다는 활기를 주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다 떠나 텅 빈 공간에 홀로 남겨진 환경이 생소했다. 불과 하루 전 까진 비좁은 곳에서 인도, 네팔 아이들과 부대끼며 한밤중 소음과 불빛에 잠을 여러 번 깨며 언제까지 이렇게 살까 했었는데 어느덧 환경은 바뀌어 있었다. 영원할 것 같은 순간은 순식간에 기억 저편으로 갔다. 동고동락하던 친구들도 안녕하게 되었다. 특별히 의도적으로 만나려고 하지 않으면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삶이란 이렇게 예측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간만에 느껴보는 혼자만의 공간에 음악도 크게 틀어보고 침대에 누워 명상에 잠겨보고 베란다에 가서 멍하게 차들이 움직이는 것도 보았다. 아이들이 떠들고 불을 켜는 일이 없어도 밤중에 깨던 습관으로 중간에 깨면 한밤중에 밖의 전망 보다가 잠을 청하기는 하였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느껴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고 마음은 평안했다.

안식처 - 그렇게 공사 중인 집에서 5일 정도 지낸 후 생각지도 못하게 CIO(Chief Information Officer)의 집에서 남은 기간 동안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 분은 지난 수 십년간 UN 기구에서 근무하시다가 나보다 3개월 먼저 IRENA에 오시게 되어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살고 계신 터였다. 나의 상황을 듣고 본인 집에 들어오라고 했던 것이다. 인공섬 위에 조성된 초호화 주택단지로 집 현관을 나서면 1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수영장과 체육관에 조금 걸어 나가면 인공해변이 있고 바다에서는 카누를 탈 수 있는 내 생에 언제 살아 볼 수 있을지 생각이 드는 그런 집이였다. 더욱이 이 분께서 매일 출퇴근시 태워주셔 편하게 사무실에 오고 갈 수 있었고 필요할 때마다 식재료를 사러 장보러 갈 수 있어서 마음껏 요리를 할 수 있었다. 이 집에서 IRENA 남은 계약 기간 동안 CIO 와 서로 의지하며 지낼 수 있었다.

 

3. 낮아짐과 교훈

외교부의 노고와 IRENA 와의 긴밀한 협조로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해 더욱 깊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국제기구의 조직 구성, 업무 프로세스, 업무 환경을 접할 수 있었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싼 UAE 거주비용과 물가로 식사 같은 경우 외식하기 보다는 식재료를 사서 집에서 요리해 먹었고 개인적 차량을 이용하기 보다는 불편하고 시간은 좀 더 소요가 되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숙소는 개인적 공간은 포기하고 한 방에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자고 화장실을 공유하며 숙박비를 줄일 수 있었다.

대우조선해양에서 대리로 근무 중 인정도 받고 해외유학의 수혜도 받았다. 미국에서 장학금을 받고 석사과정 중 학교에서 선발되어 그린란드에서 현장연구를 했고 공대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MBA 학생들과 인도 인턴십에도 선발되었었다. 이렇게 잘났다고 살아왔지만 중동 사막에 위치한 IRENA 에서 근무하며 광야의 삶 속에서 낮아짐을 경험하였고 그 동안 보지 못한 나의 자만, 교만을 인정하게 되었다. 결국 모든 인생은 고난과 절망을 통해 눈에 보이는 상대적 가치인 명예, , 재미 등을 내려놓게 되고 보이지 않는 절대적 가치인 신뢰, 사랑, 의리, 용서 등에 소망을 두게 됨을 깨달았다. 고난이든 행복이든 삶의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인생임을 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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