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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협력전문가 파견 - UNICEF 라오스 사무소

등록일
2017-05-22 21:24:01
조회수
3758

시간이 멈춘 라오스에서의 시간여행


이름 : 김택수
근무기구 및 부서 : UNICEF 라오스 사무소 보건 및 영양섹션
직위 : Health Officer (2013-2015), Innovations and ICT-enabled(C4D) Consultant (2016 - )

근무기간: 2013.12.24.-2015.12.23. (코이카 다자협력전문가)
               2016.1.4.-현재 (컨설턴트)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또 다른 여행>


  꾸준히 잘 다니던 사기업을 그만두고 떠난 대학원 유학생활은 나의 삶의 여정의 궤도를 크게 바꿔주는 계기가 됐다. 과정을 마치고 1년간 현장 속에서 머물며 지냈던 말라위 생활을 거치면서 현장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졌고, 조금은 체계적으로 정책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말라위 생활을 마치고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돼 더욱 큰 책임감이 나에게 주어졌던 시기에 코이카 다자협력 전문가 2기 공고를 알게 됐고, 감사하게도 UNICEF 라오스 사무소로 파견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군생활, 직장생활, 유학, 말라위 생활 등 다양한 외국인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는 것에는 두려움은 없었지만 UN이라는 새로운 환경에는 기대와 부담이 동시에 찾아왔다. 추운 겨울로 내딛고 있던 대한민국을 뒤로하고 시간이 멈추어 있다는 라오스 비엔티엔에 2013년 12월23일 도착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상당한 수의 직원들과 현지 공무원들이 휴가 중이라 실제 업무는 1월 초가 되어서야 진행됐고 그 전까지는 기구에 대한 이해와 라오스 현지 적응을 위한 시간을 보냈다.

 

<빠르게 지나간 UNICEF 라오스에서의 3년>


  UNICEF 라오스에서의 3년은 크게 두 가지 영역에서 담당업무가 주어지게 되었다. 첫 번째 해에는 주로 모자보건사업 안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사업들을 담당하고 지원하게 되었다. 라오스에서는 4개의 UN기구들(UNICEF, WHO, UNFPA, WFP)이 함께 공동으로 진행하는 모자보건 사업이 5년간 진행됐다. 라오스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정말 많은 회의들이 계속됐다. 라오스 보건부를 비롯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다 보니 큰 대의에는 일치를 보았지만 세부 프로그램 단위로 내려갔을 때 상의해야하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공동 UN프로그램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모든 UN기구들이 공통된 목소리로 하나의 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이지만, 반면 단점은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동의와 함께 진행하기에 일의 진척사항이 상당히 더디고 그 사업의 세부적인 면들이 상당히 복잡하다는 데 있다.


  나의 업무는 이 복잡한 사업들 중 유니세프의 역할을 지원하는 것이었는데, 유니세프의 주 사업지역은 라오스 북부의 루앙남타, 퐁살리 주였다. 이들 주에서 진행하고 있는 통합형 모자보건 아웃리치 서비스를 모니터링하고 중앙공무원들과 지방공무원들의 역량을 높여, 서비스 전달이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유지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덕분에 비엔티엔 사무실에서 문서작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북부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역 주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지방 공무원들의 고충을 함께 귀담아 들을 수 있었다. 라오스어를 하지 못해 상당부분 직원들이나 중앙 공무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눈으로 담아올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두 번째 해(2015년)부터는 유니세프의 보건 파트의 집중 분야에 변화가 있으며 그 부분에 나의 역량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한 해가 되었다. 2015년에는 기존 보건프로그램에 ICT가 결합된 접근방식이 유니세프 라오스 사무소의 주된 사업 전략이 되었다. 이미 파일럿으로 진행하고 있던 백신 콜드체인 시스템과 덧붙여 라오스 보건부의 국가eHealth전략 구축 태스크 포스팀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기존에 파트너십을 갖고 있던 보건부의 부서가 아닌 새로운 부서의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하게 되어 기존에 쌓아둔 익숙함이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게 됐지만, 또 다른 설레임이 1년을 덮을 것 같은 좋은 느낌을 가졌다. 뉴욕에서 파견된 헤드쿼터 컨설턴트와 함께 라오스 내의 많은 기업, 정부부처 담당자들을 인터뷰하고 라오스에서 ICT를 활용한 보건 전략을 구축하는 시작점에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이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2016년부터 이며, 전략이 현장 속에서 빛을 나타내게 된 것도 2016년부터이다. 

(중략)

 

<국제기구와 영어, 떼려야 뗄 수 없는 친구>


  유니세프에서 근무하면서 사용하게 되는 언어 ‘영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시기가 있었다. 국제기구라는 조직의 특성상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을 갖고 모이게 된다. 각자가 살아온 삶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하나의 가치 아래 자신의 모습을 맞춰가는 것이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에서는 항상 공통적인 부분을 강화하고 다른 부분을 이해하며 조직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일을 하는데 있어 가장 공통적인 부분은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인 언어이다.


  카투사 군복무, 세계지식포럼사무국, 국제백신연구소, 영국유학, 프로젝트 말라위, 그리고 유니세프 라오스까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상당히 영어를 많이 써야하는 시간을 보냈음에도 아직도 ‘영어’에 있어서는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는 군시절 가장 극에 달했다. 당시 룸메이트였던 친구는 매일 밤 영화와 게임, 음주 등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바로 옆 나는 토익 책과 단어장을 붙들고 씨름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저 (미군)친구보다 나아질 수 없다는 (너무 당연한) 사실’에 좌절 아닌 좌절로 상당한 슬럼프의 시기도 보냈다. 이처럼 초중고등 정규교육을 영어권 국가에서 받지 않은 이에게 영어의 생활화란 상당히 높은 장벽으로 다가온다. 시험을 위한 영어를 넘어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이 문제는 심각해진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어느 정도의 영어실력이 형성된다면 그 때부터는 콘텐츠 싸움이라는 것이다. 유창하지만 실속 없는 영어를 잔뜩 이야기하는 원어민과 더듬거리지만 정확하게 논점을 꿰뚫고 있는 비원어민의 영어를 놓고 어떤 영어가 더 뛰어나다고 볼 수 있을까? 

  일부의 한국 사람들이 우스워하는 인도식 영어, 동남아식 영어, 중동식 영어나 아프리카식 영어에서 오히려 더 고급스러운 표현을 듣거나 논리적이고 통찰력 있는 메시지들을 들을 수 있다. 결국 어느 식의 영어가 문제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내실이 어떠냐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다양한 스타일의 영어를 구사하는 국제기구 직원들 내에서 발음은 크게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는다.  

  학부과정까지 대한민국의 교육 커리큘럼을 따라간 사람에게 새로운 언어로 살아가고 일하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자 과제이다. 하지만 그 도전을 받아들이고 그 사다리 속에 발을 얹는다면 또 다른 세상 속의 자신에게 도전할 수 있다. 더 큰 경쟁의 무대에서 자신을 나타낼 수 있으며 자신의 능력을 표현할 수 있는 소중한 도구가 된다. 

<쉼표, 그리고 또 다른 시작> 

  코이카 다자협력 전문가로 라오스에서 머물렀던 2년이 지나고, 새로운 포지션인 컨설턴트로 유니세프 라오스 사무소에서 1년의 시간을 보냈다. 새로운 도전 앞에는 늘 기대와 우려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다음 발걸음을 위해 어떤 모습을 준비할지에 대한 고민과 익숙한 일에 대한 자신감이 공존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살며 일할 곳이 다른 아시아 국가일지, 아프리카나 중동일지, 남미일지, 혹은 라오스에 남을 지, 한국으로 돌아갈지도 알 수도 없다. 이렇게 노마드의 삶을 사는 것이 익숙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나의 생각과 상식을 뛰어넘는 기회가 올 것으로 기대한다. 늘 그랬듯이 '내 능력'으로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기회가 주어졌고, 기 기회는 다음 기회를 위한 디딤돌이 됐고,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는 렌즈가 됐다. 영국에서의 1년이 학문적 접근을 통한 '사람'에 대한 이해와 연구를 하는 시간이었다면, 말라위에서의 1년은 글자가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되고/적용될 수 없는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고, 라오스에서의 2년 코이카 다자협력전문가 근무와 능력을 인정받아 계속 근무할 수 있게 된 1년간의 컨설턴트 경험은 학문과 현장이 어떻게 합쳐져 정책으로 발현되고 국가의 길을 제시하게 되는지를 보는 시간이 되었다. 라오스에서의 남은 기간은 전문가로써의 역량을 발전시키고, 다음 발걸음을 내딛기 위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 본다.


  나에게 다자협력전문가는 새로운 기회이상의 의미였다. 국제기구에 진출하거나 UN의 일원이 되는 것에 대한 도전도 중요했지만, 가정을 꾸린 가장으로써 갖게 되는 첫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 분야가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다가올 의미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도 많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국제기구에서 본인들의 꿈을 펼치고, 세계인의 일원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2015 유니세프 라오스 단체사진 

                    (2015 유니세프 라오스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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