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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UNV 청년봉사단 - 유엔인구기금 인도네시아 사무소

등록일
2017-05-22 21:23:08
조회수
2741

 

윤경빈
유엔인구기금 (United Nations Population Fund: UNFPA)
Indonesia Country Office, Reproductive Health Unit
United Nations Volunteers in Reproductive Health
2015.6.8 - 2016.12.8 (1년 6개월)


조산사(Midwife)와의 인터뷰

2014년 나는 라오스 북쪽의 도시 루앙프라방에 있었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지원했던 국제기구 인턴십에 합격하여 그 해 여름부터 라오스 유엔봉사단 (UNV Laos)에서 커뮤니케이션 인턴 (Communication Support Intern) 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유엔봉사단 활동 홍보를 위해 루앙프라방에서 조산사 (Midwife)로 근무 중인 유엔 봉사단원을 인터뷰하게 되었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패트리샤는 UNFPA에서 근무하는 조산사로 라오스의 높은 모자사망률을 줄이고 현지인 조산사 육성과, 루앙프라방 보건 대학교 내의 조산사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조산사로 일하며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나눠달라는 나의 요청에 그녀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만든 조산사 교육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얻은 첫 졸업생 중 한 명이 보건 시설이 낙후된 지역의 조산사로 파견되었다고 했다. 그 학생이 파견된 마을은 도로를 비롯한 모든 인프라 시설이 낙후된 지역이라 조산사가 오토바이를 타고 방문진료를 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어느 밤 산모가 출혈이 너무 심하다는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포장이 되지 않은 진흙 길을 몇 번이나 미끄러지며 도착해보니 예정보다 이른 분만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과다출혈로 죽음의 위기에 놓인 산모에게 긴급처치를 시행하여 아이와 산모 모두의 목숨을 모두 구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라오스의 각 지역에서 조산사로 활동하는 자신의 학생들에게서 전해오는 경험들을 들을 때마다 보람을 느낀단 이야기를 전하는 그녀와 목소리와 표정에서 뿌듯함이 느껴졌다.

기억에 남는 이 인터뷰 외에도 유니세프를 비롯한 유엔기관에서 일하는 유엔 봉사단들을 인터뷰하고 정기적인 모임을 가질 때마다 이들에게 들었던 봉사단원으로의 생활은 유엔 봉사단에 대한 열망이 자라나기에 충분했다. 마침 그 해 가을에 열린 Korean Youth UNV 프로그램에 지원하였고 약 5개월간의 선발 과정을 거쳐 다음해 여름 UNFPA 인도네시아 사무소에서 Reproductive Health Officer로 근무를 시작하였다.


About UNFPA Indonesia Office

UNFPA 인도네시아 사무소는 1972년 이 나라의 수도 자카르타에 문을 열었다. 인구가 세계 4위에 육박하고 만 이 천개가 넘는 섬과 각 섬마다 다른 종족과 문화로 이뤄진 인도네시아는 70년대부터 국가 주도의 가족계획이 이뤄졌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족계획부서가 보건부 산하에 있는데 반해 인도네시아는 독특하게도 가족계획전담기구가 보건부와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 사무소는 다음 여섯 개 분야에서 프로그램을 운영되고 있다: Adolescent 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 Humanitarian, Advocacy, Gender, Reproductive Health, Population Development. 우리 사무소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4년 혹은 5년 주기의 국가프로그램 (Country Programme: CP)인데, 이 프로그램은 인도네시아의 정부의 중장기국가개발프로그램의 우선순위를 고려해 만들어졌으며 올해는 9번째 국가 프로그램 (CP9)을 시작하는 첫 해이다. 사무소의 초기 프로그램이 피임기구 보급, 낙후지역 보건소 설치와 같은 직접적인 서비스 제공 (Service Delivery)에 중점을 두었다면 인도네시아 정부의 기술적, 인적역량이 어느 정도 갖춰진 현재는 보건부와 통계청 그리고 가족계획청을 포함한 정부기관에 정책 조언과 프로그램 모니터링, 정책 평가 단계 초점을 맞춰 일하고 있다.

 

발리에서 생긴 일: The 4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Family Planning

근무 초반에 맡은 주요 업무 중 하나는 그 해 11월 말 발리에서 개최되는 The 4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Family Planning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이 컨퍼런스는 4년 마다 개최되는데 이번엔 인도네시아가 아시아 국가 최초로 개최국이 되었다. 나는 UNFPA HQ (UNFPA 본부, 뉴욕 소재) 에 있는 코디네이터 한 명과 팀을 이루어 본부와 지역사무소를 포함한 UNFPA 대표단과 정부기관 파트너, 국내 NGO 그리고 UNFPA 인도네시아 사무소 직원을 포함한 총 300명 정도의 참석자를 코디네이팅했다. 나는 주로 UNFPA와 인도네시아 정부 그리고 컨퍼런스 조직위 간의 원활한 소통을 도왔는데 국제와 국내수준에서 코디네이팅이 필요한 분야들을 목록별로 정리해 업무를 분장하고 월별/주별로 이뤄지는 컨퍼런스 콜에서 국가 사무소를 대표하여 준비현황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하였다. 또한 컨퍼런스 준비 위원회의 핵심 파트너 중 하나인 존스 홉킨스 대학,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유엔사무총장 (UNSG)을 대표해 참석했던 UNFPA Executive Director를 포함한 VIP 의전과 등록, 안전체크, 대표단 단체등록, 물류지원(Logistic Support), 인도네시아 보건부 및 각 국의 보건부 장관들 간의 고위급회의 일정조정 등을 업무를 담당하였다.

어느덧 준비가 마무리 되어가고 예정된 컨퍼런스 개최 일을 사흘 앞둔 무렵 발리 근처 섬에서 화산이 폭발해 컨퍼런스 일정이 취소 및 무기한 연기되는 일이 발생했다. 당혹스런 마음을 추스르고 항공편과 숙소를 포함한 모든 예약을 연기 및 취소하고, 예정된 참석자와 발표자의 일정 조정을 포함한 모든 준비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했다. 예상에 없던 일이 벌어졌지만 이 경험을 통해 위기를 관리하는 법을 배웠고 컨퍼런스를 함께 준비했던 동료들과도 예전보다 더욱 돈독한 관계가 될 수 있었다. 이듬해 1월로 연기된 컨퍼런스는 삼천 명이 넘는 참석자를 동반해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지속가능한 개발계획(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

하반기 주요 업무는 지속가능한 개발계획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 업무였다. 올해 초반부터 SDGs의 효율적인 계획 (Planning)과 시행(Implementation) 및 모니터링 (Monitoring)을 위해 정부 관계자와 비정부기구 그리고 파트너 기관들과 여러 번의 기술 회의 (Technical Meeting)를 거쳤고 이 회의는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SDG는 총 17개의 목적(Goal)가 있고 다시 여러 개의 목표(Target)로 나눠진다. 그리고 목표별로 국제수준(International Level)에서 선택하기를 권고하는 지표 (Indicator)가 있는데 이 중에는 나라별 역량과 재정상황에 따라 데이터 수집이 가능한 혹은 불가능한 지표가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경우, 국가수준 (National Level)에서 수집할 수 있는 데이터에 따른 SDG 지표를 선정하기 위해 각각의 SDG Target과 관련 있는 정부기관, 유엔기구, 각국의 개발협력기구 그리고 NGO 기관들을 초청해 논의를 시작했다. 나의 주요 업무는 UNFPA의 임무 (Mandate)와 일치하는 지표를 선별하고, 지표에 따른 필요한 데이터 수집에 관련해 우리 기구에서 인도네시아 정부에 어떠한 지원들을 할 수 있는지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문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SDG와 관련된 기초자료 수집이 필요했다. 우선 Inter-agency Expert Group on SDG Indicators (IAEG-SDGs)에서 만들어진 메타데이터들과, 인도네시아 보건부에서 만든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리 기구와 인도네시아 정부가 원하는 지표가 구별된 큰 지도를 만들었다 (Mapping). 그리고 사무소의 인구개발 (Population Development) 부서와 협력하여 인도네시아 통계청과 보건부, 가족 계획청에서 시행한 Indonesia Demographic and Health Surveys (IDHS) 와 같은 통계조사 데이터를 기반으로 각 지표별 데이터 수집이 가능한지의 여부를 파악해나갔다. 

 

인도네시아 적응기: 업무와 일상생활에서

우리 기구는 매 월마다 한 번 전 직원이 모두 참석하는 회의가 있다. 아직도 첫 회의의 기억이 선명하다. 대표님과 동료들의 발언에는 적어도 두 세 개의 약어가 섞여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추측으로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던 혼돈의 두 시간이 지나고 내 책상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업무와 관련된 유엔과 정부 프로젝트 문서들을 모아 문서 앞 장에 있는 단어 축약 목록들을 외우는 것이었다. 내가 처음 읽은 문서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국가중기개발계획(RPJMN), The United Nations Development Assistance Framework(UNDAF, 인도네시아는 UNPDF라고 부른다) 그리고 우리 사무소의 국가 프로그램 문서, 파트너 기관들과 공동으로 진행한 프로젝트 문서였다. 기본 틀이 되는 문서를 습득한 다음엔 우리 팀을 비롯해 다른 팀의 업무관련 문서들을 모아 공부했다. 그리고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각 팀의 프로그램 담당 직원들을 찾아가 질문을 했다.

우리 기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나와 대표님 그리고 문서 교정을 보는 분을 제외하고 모두가 인도네시아 직원이었다. 때문에 업무 외의 시간에는 유엔 공용어인 영어 외에 현지어로 대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정부 관계자와 회의를 할 때도 통역이 배석하는 경우는 큰 회의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어 가능한 현지어를 빨리 습득해야했다. 다행히 인도네시아는 영어를 문자로 사용하는 나라이기에 제대로 배우기만 한다면 업무 문서에 적힌 내용을 파악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나는 주로 일상에서 인도네시아어를 익혔는데 밥을 주문하거나, 택시를 타거나, 물건을 살 때마다 새로운 표현과 단어들을 배웠다. 덕분에 일 년 반이 흐른 지금은 업무에 쓰이는 표현이나 티켓 예약이나 구매, 길 묻기와 고장난 물건 수리 요청과 같은 표현들을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현지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현지어를 배우는 것은 생활의 편리함을 느끼는 것 외에도 정부 관계자와의 협력구축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일 년 반의 시간은 매일이 배움의 연속이었다. 프로그램 문서로 얻는 지식 외에도 동료들과 전담 상사와의 공동업무경험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유엔의 특성상 정부 기관과 파트너 기관들과의 협력이 요구되는 일이 많은데 한 번은 프로그램 문서에 사용된 FGM과 GBV와 관련된 단어와 표현을 두고 정부 관계자와 이 부분을 프로그램 문서에 넣느냐 마느냐를 두고 한 달이 넘어가도록 논의한 적도 있었다. 개발 프로그램을 시행함에 있어 현지 정부는 중요한 파트너임이 분명하지만 유엔에서 시행하는 프로그램의 본 목적은 수혜를 받는 이들 중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No one left behind) 하는 것이었다. 모든 이해 관계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 가치를 이어나가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맺음말

2년 전 가을 이 자리에 지원하며 내가 그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많이 고민했다. 그러다 한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친구의 대답은“지원해보지도 않고 결과를 어떻게 알아?”였다. 이 자리를 빌어 그 친구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친구의 말대로 선택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결과를 알 수 없다. 그래서 선택했고 지금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일 년 반 동안 언제나 좋았던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려운 업무를 해내었을 때 느꼈던 성취감도 있었고 때론 스스로의 능력에 의심이 들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번 경험으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공부를 더 하고 싶은지를 더 잘 알게 되었다. 또한 앞으로의 삶의 계획이 조금 더 뚜렷해졌고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도 더 생겼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본인이 원하는 일이 있는데‘아무래도 나는 이 자리에 맞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 혹은 ‘나는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라는 이유로 망설이고 있다면 도전해보기를 권한다. 결과는 그 이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부디 내가 나눈 경험들이 앞으로의 선택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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