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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UNV 전문봉사단 - UNHCR 몬테네그로 및 알바니아

등록일
2017-05-22 21:22:53
조회수
2570

박한솔
UNHCR 몬테네그로 사무소 및 알바니아 사무소 법무부 (Protection)
Associate Protection Officer (P2)
2015.11.09.~2016.07.17. (몬테네그로 사무소)
2016.07.18.~2016.11.08 (알바니아 사무소)


2015년 유럽 난민사태의 소용돌이 속으로

2015년 여름 즈음, 유엔난민기구(UNHCR)의 인턴십을 마치고 본부를 통해 네팔 사무소로 6개월간의 단기 파견(temporary assignment)을 갔다 온 나는 유럽에서 난민을 도울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드는 시리아 내전의 영향을 받아 유럽으로 밀려드는 난민 유입상황에 난민이 아닌 이주민도 합세하여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있었고, 나는 네팔 난민 캠프에서 계약직으로 인한 경험과 제네바 본부에서 국제법, 유럽법을 다루는 법무부 인턴십을 한 경험을 바탕삼아 유럽에서의 난민 보호에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인도주의적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TV를 보던 때와는 사뭇 다른 감정이 치솟았다. 꿈을 이룬다는 목표 하나로 국제법 법학석사를 취득하고 기초 경력을 쌓았으니 이제 나에게 TV 속의 난민 상황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프로의 세계가 된 것이다.


때마침 난민 유입 상황에 일손이 부족했던 모양인 유엔난민기구 몬테네그로 사무소가 외교부 국제기구인사센터 주관 2015년 UNV 전문봉사단 목록에 떴고, 나는 주저 없이 지원했다. 면접에서 어떤 질문이 나올지 예상할 수 없었던 나는 유엔 몬테네그로 홈페이지 및 관련 서적을 읽으며 사무소 업무를 철저히 외웠다. 그리고 10월, 대량난민사태와 응급상황에 대한 현장 경험과 이론지식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면접을 거쳐 나는 유엔 전문봉사단으로 합격하게 되었다. 

2015년 11월에 파견 나간 나는 첫날부터 대량난민 유입사태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고, 그 후 겨우내 혹한의 추위를 견디며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는 난민들을 만나게 되었다. 세르비아 등의 다른 발칸 유럽 국가에 비하면 몬테네그로에 유입되는 난민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내게는 이때 그들과 소통하며 얻은 경험이 일로나 삶 적으로나 그 가치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하다. 먹을 것 마실 것 없이 굶주리며 겨울 여행길에 오르는데도 병든 노부모를 끝끝내 짊어지고 가던 일가족, 내전으로 모든 일가족을 차가운 땅속에 묻고 일생 모아온 저금으로 삶의 마지막 기회를 노리려 유럽으로 향한다던 청년,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돌산을 오르며 깨진 손톱으로 안쓰럽게 앉아있으면서도 고향에서 자주 마셨던 차 한 잔 떠올리면 미소를 짓던 사람들. 그들이 하루하루 견디며 살려내는 희망의 불씨는 매일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했다. 일하면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자주 생각났다. 할머니는 피난길에 오르며 겪은 갖은 고생 이야기를 곧잘 하셨는데, 궂은 날씨에 계속되는 행군으로 발목을 접질린 후 병원을 찾을 수 없어서 평생 다리를 절게 되셨다고 했다. 그때 난민기구가 한국에 있었다면, 난민법이 보장되어 있었다면 할머니도 도움을 받으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많은 난민이 유럽이 국제난민법의 최초 발상지이며 그들의 인권이 법적으로 보장되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향하는 듯했다. 중간 중간 난민이 아닌 이주민들도 보였지만, 나는 난민의 지위가 적합한 사람에게만 부여되어야 난민의 사회적 입지도 공고할 것이고, 효율적이고 정확한 국경의 관리가 장기적으로 순수한 난민의 보호에 이바지한다고 생각한다. 유엔난민기구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여러 가지 보호 장치를 마련하고 현지 정부와 함께 올바른 난민의 지위 인정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중략)

국제기구의 일원으로 일한다는 것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과정에는 사명감, 열정, 인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과정을 지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른다. 전기가 수시로 끊기는 알바니아의 집에서 밤늦게까지 촛불 켜고 야근한 게 이제는 좋은 추억이다. 나는 한 번도 몬테네그로나 알바니아에서 살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일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고, 이제 두 나라 모두 내게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모든 임기를 마치고 알바니아를 떠나기 전에 정부 및 시민사회 인사와 작별인사를 하자 그들이 이별을 아쉬워하며 다시 만날 것을 기원해주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알바니아에 와서 그들의 나라를 위해 힘써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했다. 이별이 아쉬워서 나도 마지막 회의를 마치고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었다. 나는 끝까지 알바니아가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고 국제사회의 힘찬 일원으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우리나라 역시 전후에 국제사회의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까지 오기가 더 힘겨웠을 것이다. 이제는 강대국의 반열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유엔 및 국제기구라는 발판을 이용해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때다. 대한민국의 청년으로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큰 자부심이고 보람이다. 국제기구라는 존재가 막연하게 들릴 수는 있지만, 차곡차곡 준비해서 조금씩 경력을 쌓으며 다가가면 결코 사막 위의 신기루 같은 존재가 아니다. 국제기구 역시 여느 일터처럼 열정이 넘치는 삶의 현장이고, 실패와 노력을 통해 한 걸음 한걸음 배워나가는 청년의 무대다. 나는 앞으로도 꿈을 이룰 때까지 계속 나아갈 것이다. 부디 나의 경험이 사명감과 열정을 가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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