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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ove 해외진출 지원 - 미국 PANCOM 광고대행사

등록일
2017-05-22 21:19:48
조회수
2396

제목 : 내 이름 석자, 보류자 명단에서 신문에 오르기까지

박경미

K-move를 통해 해외인턴의 꿈을 키우다


오늘은 내가 미국으로 온 지 딱 9달째 되는 날이다. 어렸을 때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친구들의 모습이 나와는 참 다르게 느껴졌고 해외로 나가는 것은 비싼 것이라는 편견과 함께 단 한번도 제대로 꿈꿔보지 못 했다. 그래서 외국으로 나간다는 것이 나와는 참 멀게만 느껴졌다. 그 흔한 여권도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만들어 본 적이 없으며 대학교 4학년 때 짧게 2박3일 일본 여행을 다녀온 것이 내 해외 경험의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게시판에 붙어 있는 ‘K-move 스쿨’ 프로그램에 대한 광고를 보았다. 놀랍게도 우리 학교는 K-move 해외인턴 프로그램을 지원받을 수 있는 학교였고 그때부터 ‘이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해외인턴 프로그램은 꼭 이수하고 졸업해야지’라고 영어도 제대로 못 하던 내가 해외인턴이란 막연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까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당당히 지원서를 낸 후 결과 발표가 나던 날 합격이 아닌 보류자 명단에 넘어가 있었다. 한 달 안에 영어점수를 만들어 오지 않으면 탈락이 된다는 뜻이었다. 학교 4년 재학 중 나는 누구보다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었고 열정이 많은 학생이었다. 그런 내가 부족한 언어 실력 때문에 해외인턴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내 재학생활에 보상하겠다는 마음으로 학교 수업이 끝난 후에도 새벽에 일어나서도 영어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인생에서 가장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 결과 보류자 명단에 있던 내 이름이 합격자 명단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재학시절 학교 벽에 걸려 있는 해외취업자 명단 플래카드를 보고 부러워하기만 하던 내가 해외인턴의 꿈을 실현하게 되었다.

호기심 가득, 나의 첫 미국생활은?


2016년 1월 7일, 가족과의 헤어짐에 슬픔도 뒤로한 채 부푼 마음 안고 LA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처음 미국에 오던 날, 숟가락 하나 없이 와 내일 당장 갈 집을 구하지도 못 해 게스트 하우스에서 며칠을 묵기도했고 총 소지가 가능한 미국 땅에서 겁도 없이 깜깜한 거리를 걸어가겠다고 했던 용감하고도 무식한 인턴이었다. 처음 오믈렛을 먹던 날 오믈렛 안에 왜 밥이 없냐며 놀라기도 했고 식당에서는 왜 숟가락을 주지 않냐고 의문을 가지기도 했었다. 1불도 아끼겠다고 차로 30분도 안되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왕복 170정거장을 거쳐 2시간 동안 달려 바다를 보러 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라이드도 받고 도움도 받으며 미국 생활에 많이 적응했다. 사실 처음엔 한인타운에 거주하고 있어 미국이란게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들어간 스타벅스에서 맥북을 펼쳐놓고 베이글을 먹으며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니 어릴 적 영화 속에서 펼쳐지던 모습이 내 눈앞에서 펼쳐짐에 ‘아! 이곳이 미국이구나’하며 실감 났다.

보류자 명단에서 신문에 오르기까지 

3학년 때 ‘기획과 광고’ 수업을 들으면서부터 광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해외인턴 준비 당시 광고 대행사인 PANCOM에 입사하고 싶었다. 포트폴리오에는 덜하지도 과하지도 않게 정말 재학 시절 작업했던 작업물들로 진솔하게 만들었고 면접 당시엔 나의 가장 큰 장점인 ‘열정’과 ‘성실’을 집중적으로 어필하였다. 주어진 일에 책임감 있게 처리할 자신은 누구보다 있었다. 첫 출근을 하던 날 잔뜩 차려입고 간 나를 보고 다들 “너 계속 그렇게 입고 다닐 거야?”라고 물었다. 자유로운 미국 광고 회사에서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다니는 직원들 사이 잔뜩 차려입고 긴장하고 있던 내가 얼마나 튀었을까? 지금 나는 Creative Team에서 제작 파트의 인턴으로 있다. 나름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고 왔다 생각했는데 막상 실무에 나와보니 미숙한 나의 모습에 위축된 날들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던 일을 배우고 할 수 있음에 너무 감사하고 매 순간 회사 생활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처음 내가 만든 시안이 채택되고 신문 전면에 실리게 된 날은 신기하기도 하고 그 뿌듯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최근에는 농심 아메리카(주)에 신라면 시티 투어버스 디자인을 의뢰받아 작업한 바가 있다. 지금 그 버스 디자인은 뉴욕 맨해튼 거리를 달리고 있다. 인턴 신분인 내가 뉴욕의 거리를 달리는 시티투어버스를 디자인한 것이 이슈가 되어 신문과 뉴스에 내 기사가 올라가기도 했다. 유명인사나 대단한 일화만 신문기사에 실리고 검색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내 이름 석자와 함께 사진이 여러 신문에 도배되던 날은 얼떨떨하기도 하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렇게 큰 프로젝트에 나를 믿고 맡게 해주신 회사 측에도 정말 감사하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도전해보자


한국은 고학력 자가 넘쳐나고 취업의 문은 한정되어 있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스펙 쌓기 바쁘며 토익 점수 내기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 좁은 취업문 앞에서 과연 그들이 원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제대로 된 자신만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내가 이곳에서 인턴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큰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었던 것은 다 같이 아이디어를 내고 인턴의 의견도 존중하며 모든 일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재학 시절 서울로도 취업을 하고 싶어 하지 않을 만큼 변화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아이였다. 그런 내가 K-move를 만나고 미국에 와서 생활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만의 틀에 갇혀 살았는지 얼마나 아등바등 살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여행 사진들이나 좋은 일의 이야기만 듣고 ‘해외 인턴은 즐거운 거구나!’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밤늦게 야근을 하기도 하고 신분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 하는 일도 많다. 하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듯 해외인턴은 정말 많은 경험을 주고 나 자신을 더 성장하게 만든다. 나 또한 그랬듯 월드잡이나 K-move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에 수시로 관심 가져본다면 국내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보다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나도 인턴 신분에 미국에서의 앞날들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계속해서 직무능력을 향상시켜 회사에서 인정받은 직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남들 모두가 바라보는 곳에서 조금만 시야를 돌려 용기 내어 도전해본다면 남 보여주기 식이 아닌 정말 나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 경험의 기회를 잡고 스펙이란 틀 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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